자기 계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종착점은 어딜까? 건강, 관계, 돈의 어느 지점일 것이다.
건강과 관계의 종착점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통 이상, 그 정도 언저리에서 자리 잡으면 만족한다. 돈은 다르다. 먹고 살 정도에서 만족하는 사람도 있지만 서울 중심지 큰 빌딩의 소유주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유독 돈에 관한 스펙트럼이 넓게 분포하는 이유는 돈은 욕망을 자극하기에 그렇다. 돈은 소비와 연결되고 소비를 위한 상품은 다양하다. 상품 뒤에는 회사가 있고 회사는 다양한 상품,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지 않으면 죽는다.
사람이 있고, 사람들이 있고, 회사가 있다. 사람은 사람들이 되고 싶고 회사가 되고 싶다. 돈을 더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람에게 상품을 팔고 회사는 사람과 사람들에게 상품을 판다. 상품을 팔면서 상품을 사야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최면을 건다.
사람과 사람들은 상품을 선택하는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적극적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상품이 나를 성장시킨다고 믿는다. 성장으로 삶의 토양이 비옥해진다는 신념을 가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비옥해진 토양에서 재배하는 상품을 누군가에게 팔기 원한다.
수익을 내고 싶다. 수익은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기에 그렇다. 욕망의 쳇바퀴에 올라타는 순간이다. 한 바퀴 돌 때마다 지루함은 반복되지만 수익은 늘어나리라 생각한다. 같은 쳇바퀴를 계속 돌면 더 큰 쳇바퀴에서 돌고 싶다. 스스로의 힘으로 더 큰 쳇바퀴로 옮기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기에 더 큰 쳇바퀴를 알려 줄 사람들과 회사에 눈을 돌린다.
사람들과 회사는 더 큰 쳇바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까? 대부분의 사람들과 회사는 사람이나 사람들이 작은 쳇바퀴에 머물기 원한다. 작은 쳇바퀴의 개수만 늘리려 하지 사람들이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작은 쳇바퀴에서 큰 쳇바퀴로 옮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회사의 쳇바퀴가 도전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다.
조직은 조직을 뛰어넘는 개인을 담지 못한다. 조직을 넘는 이가 생기면 조직이 위협을 받는다고 믿는다. 조직을 뛰어넘는 개인은 공포다. 조직을 뛰어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회사가 성장했던 길이다. 거대 기업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따라 잡힌 역사가 증명한다. 큰 회사가 소수의 사람에게 따라 잡히는 구조여야 회사는 다양하고 튼실하게 발전한다.
자기 계발을 선도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 회사는 자기 계발 추종자들을 위해 다양한 동기부여 상품을 유무상으로 제공한다. 많은 사람들은 모여들고 그 안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의 경지에 오른다. 그 사람들은 무엇을 원할까? 계속 반복하는 것일까? 이때가 더 큰 쳇바퀴가 요구되는 시기다. 사람은 위를 본다. 옮겨가고 싶지만 물꼬를 터주는 이는 없다. 회사도 자신을 넘는 길을 터줄 마음은 없다. 욕구가 감당되지 않으면 혼자 힘으로 뚫고 나가라는 비장을 가장한 비겁에 숨는다. 특출난 개인이 두렵다.
품을 수 있는 한계가 그 회사의 사이즈다. 한계가 없어야 사이즈에 갇히지 않는다. 사람도, 사람들도 회사도.
청(靑)이 두려운가? 청(靑)이 두려운 람(藍)은 람(藍)에 머물 수밖에 없다. 람(藍)을 뚫고 나온 청(靑)이 있어야 내가 청(靑)이 되고 더 진하고 큰 청(靑)이 된다.
람(藍)을 지난 청(靑)은 람(藍)을 적수로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청(靑)은 람(藍)을 마음에 품는다. 고향이기에 그렇다. 부모이기에 그렇다. 내 존재가 있는 근원적은 이유, 이를 외면하지 못한다. 두려운가? 그곳까지가 뻗어나갈 수 있는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