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로 사는가? 삶은 언제나 외부로부터 출렁인다. 삶은 내 안에서부터 나와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삶에서 마주하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은 균형을 잃는다. 사람의 한계인 것은 자명하다. 한계를 깨고 자신 안의 삶을 살려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노력은 그들을 넘어서지 못한다.
방향과 의지가 분명해도 지나가는 바람에 방향은 바뀌고 의지는 꺾인다. 사람이 사람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깊은 곳에 숨겨있는 힘은 작동하지 않는다. 내 안의 힘을 쓰기 위해서 눌러야 하는 단추를 찾기 어렵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가 모든 것을 만든다는 것을 알지만 앎은 지식에 멈춘다. 지식은 감정을 넘지 못한다. 감정은 혼자인 경우에야 다스려진다. 상대와 함께할 때의 감정은 좁은 틈만 있어도 비집고 나온다.
혼자의 시간에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각진 돌이 동그래지기 위해서는 부딪힘을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다. 돌의 인내가 만들어 낸 것일까, 부딪히는 돌들이 많기 때문일까? 인내가 만들어 낸 것이라면 인내를 보인 돌이 대단한 것이다.
인내가 필요한 이유는 달려드는 돌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내가 주인공인가? 달려드는 돌이 주인공인가?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 세상은 혼자 살지 못한다. 달려드는 돌은 상수다. 인내는 선택이다. 돌이 상수인 세상에 인내를 발휘하지 못하면 모난 돌로 남는다.
인내인가? 달려드는 돌인가? 달려드는 돌이 있기에 인내가 생긴다. 세상은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도록 돌을 굴리고 있는 줄 모른다. 깨지고, 상처 나지 않기 위해 달려드는 돌을 피하기만 하면 인내도 모난 돌도 제자리다.
떼어져 나간 부분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곡선이 남는다. 부드러움은 삶이 주인을 찾아가는 증거다. 방향이 보이지 않으면 자신을 봐야 한다. 각이 진 체인지 부드러운 모양인지 아니면 그 중간인지 말이다.
새벽에 눈을 뜨고 세상을 보면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 하루를 살 수 있음에 기분이 좋아진다. 작은 생각으로 미소가 생긴다. 겉모습이 변하는 것을 보며 안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안다.
어렵다. 힘들다. 지친다. 그럼에도 이런 것을 받아들인다. 억지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냥 이게 삶이다. 내 삶이다. 그리고 또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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