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 때문에 인간은 낙원에서 추방됐고, 게으름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라고 카프카는 말했다. 상반되는 두 개념이 인간에게는 행복의 반대편에 서게 하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기를 원한다. 지름길이 있다면 이 생각이 유효하지만 만일 지름길이 없다면 스스로를 옭아매는 일이다.
곡선과 직선을 생각해 보자 직성의 정의는 두 점간의 최단 거리를 이은 선이다. 곡선은 점이 연속적으로 움직여 남긴 자취로 적어도 한 번 이상 방향이 바뀌는 연속적인 경로다. 원하는 것이 정해지면 지금과 원하는 것 사이에 직선으로 이으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려고 하는 것은 직선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고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것은 시간 낭비, 노력의 낭비라 생각한다.
직선은 가상의 개념이다. 점과 점을 이은 최단 거리는 실제로 없다. 어떤 과학적인 도구도 직선을 그을 수 없다. 점을 이은 선은 곡선일 수밖에 없다. 현실이 그런데도 사람들은 목표를 정하면 최단 거리에 목말라한다. 최단 경로에서 벗어나면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방향이 중요하지 속도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방향은 무엇일까?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모든 경로는 곡선이다. 속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시간의 문제는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방향이라는 것도 없지 않은가?
어떤 목표가 있다면 그곳으로 가는 경로는 다양하다. A라는 목표를 정하고 A를 등지고 가면 잘못됐다고 할 수 있나? 선악의 문제라면 다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방향이란 없다. 단지 생각보다 늦어진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A를 정하고 뒤로 가는 것이 꼭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목표한 바에서 잠시 멀어짐으로써 위험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 목표가 정해지면 어떤 곳에 먼저 점을 찍든 목표로 향한다.
목표와의 최단 경로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으로 힘들어한다. 늦어지다가 어쩌면 다른 곳으로 가버릴까 봐 두렵다. 사실 목표라는 것도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도달점이 아니다. 상황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면 처음의 목표도 변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니까 어떻게 살아도 좋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해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한 점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최단 거리가 없으니 최단 경로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속도보다 방향이다’라는 말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속도도 방향도 결국은 같은 것에 집착하게 된다. 마음에 무엇을 둘지 생각하고, 그것이 큰 별이 되면 어떤 보폭과 방향으로 가든 그곳으로 갈 것은 자명하다.
마음의 별을 돈, 건강, 관계 어떤 것이든 관계없지만, 기준을 물리적인 양에 두는 것은 바닷가에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쌓았다고 생각하면 부서지고, 쌓았다고 생각하면 더 큰 것을 쌓고 싶어 한다. 내 마음속 별이 무엇인지의 생각은 언제나 유효하다. 별은 선의를 가지면 빛을 얻는다. 선의가 있어야 별은 빛나고 별이 빛나야 언제나 그곳을 마음의 중심에 둘 수 있다.
지름길은 없다. 방향도 없다. 선의가 빛을 발하면 나에게로 길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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