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퍼플릭시티, 끌로드, 재미나이, 그록 등 AI가 게임 체인저로 등장했다. 검색만이 아니라 많은 작업들을 대신해 준다. 간단한 명령 한 줄이면 글, 그림, 코딩, 문제 해결 방법, 어려운 정보 등을 눈앞에 보여온다.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사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검색엔진에서 물었던 내용을 AI에게 묻고, 많은 작업을 AI에게 시킨다. 대단한 도구인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AI가 도움만 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매일 A4 한 장 분량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많은 일이 있거나, 피곤해도 글을 쓰려했다. 아무리 바빠도 한 줄 이상 글을 썼다. 챗지피티를 사용하면서 정보와 지식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을 글에 넣었다. 어렵지 않게 분량을 채웠다. 생각해서 쓴 내용보다 챗지피티를 가지고 쓴 내용이 많아지는 날도 있었다.
새롭게 배우는 것에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자연스럽게 글쓰기가 어려워졌다. 어느 날은 챗지피를 100% 사용해서 글을 썼다. 이런 날이 많아지면서 글쓰기가 귀찮아졌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쓰기도 했다. 지금 배우는 과정이 다 지나면 혼자 힘으로 글을 쓴다고 다짐했다. 일시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글 쓰려는 노력과 생각이 줄었다. 글 쓰는 일상이 단숨에 무너졌다.
AI로 글 쓰는 방법에 관한 책도 나왔고, AI와 함께 쓴 책도 나왔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AI를 이용하면 다양한 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AI에게 명령만 잘 내리면 글의 질도 좋아지고, 다양한 방면에서의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편함은 얻고자 하는 가치를 쉽게 망가트린다. 고통 없는 배움은 없다. 편함이 반복되면 배움은 얕아진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기도 했지만 가족이나 친한 사람의 전화번호는 외웠다. 지금은 내 폰의 전화번호밖에는 외우지 못한다. 노래방 기기가 없을 때는 가사를 외웠다. 이제는 굳이 외우지 않는다. 폰 번호나 가사를 외우지 않았다고 피해를 본 적은 없지만 일상에서 간단한 것도 외우려 하지 않는다.
AI의 능력은 차고 넘친다. 챗지피티 같은 거대언어모델 AI는 말할 것도 없고, 여러 영역에 특화된 AI도 그렇다.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영상을 만든다. 코딩을 하고, 발표자료를 만들며, 목소리를 더빙한다. 도표를 만들고, 자료를 정리하며, 음성을 글로 만든다. 마음만 먹으면 AI에게 내 일의 대부분을 시킬 수 있다.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이러한 유혹에 빠져 사소한 질문도 AI에게 한다. 내가 해왔던 많은 일을 AI가 한다.
자신이 문명의 이기를 잘 이용하는 것 같다. 남들보다 앞선다는 생각이 든다. AI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시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AI를 사용할수록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곤 한다. 내 능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PPT를 만드는 것도 예전만 못하다. 특정 지식과 정보에 대한 판단력도 약해진 것 같다. 특히 글 쓰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다양한 종류의 글을 쓸 수 있고, 깊은 지식과 정보의 글을 쓸 수 있지만 생각이 빠져 있다. 나만의 생각이 글에 녹아있지 않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가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먼 위험하다. AI가 나의 능력에 날개를 달아줄 수도 있지만 내 가치가 자라는 토양을 황폐화시킬 수도 있다. 문명의 이기가 가진 양면성이다.
정확한 수치가 필요한 글이 있다. 수치를 찾기 위해 검색을 하거나, 책을 찾아봤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출처를 밝히라는 말과 함께 특정 주제에 대한 최근 자료를 검색해서 정리해 달라고 하면 된다. 주제를 정하고 관련 자료 목록을 만들어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힘이 쌓이지 않는다. 어떤 명령어를 입력할 것인지에 대한 프롬프트 능력만 생긴다. 이마저도 공유가 돼서 나만의 프롬프트를 만들려 노력하지 않는다.
AI는 많은 분야에서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하는데 빠져있다. 이럴수록 사람들이 만들려는 가치의 차별화는 없어진다. 글쓰기에서의 차별화는 얼마나 많이 글을 썼느냐에 달려 있다. AI에만 기대면 글쓰기의 차별화는 어렵다. 편함에 중독되면 끊기 어렵다. AI로 글을 쓰면 편함에 중독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벗어나기 어렵다. AI를 사용하는 능력만으로는 차별화는 한계가 있다.
진리는 단순하다. 직접 운동을 해야 근력이 생긴다. 남이 운동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는 방법을 앵무새처럼 말할 수는 있지만 내 몸에 근육이 생기지는 않는다. 유튜브에서 우후죽순 생긴 AI 양산형 채널이 시들해지는 것을 보면서, 색깔이 같아지면 차별성은 없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다리로 뛰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글을 써야 내 가치가 차별화된다. 편함은 누구나 찾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쉽다는 것이다. 쉬운 것은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 어려움이 반복되는 그곳에서 차별화가 생긴다. 쉬운 길이 보이면 그곳으로 들지 말자. 어려운 길을 선택하자. 그것만이 나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