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해체되었다. 왜일까? 무엇을 위해서일까? 더 빠른 길을 가고 싶었다. 눈에 들어온 길로 질주했다. 그 길만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옆을 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렸다. 막아서는 것들은 모두 무찔러야 할 대상이라고 여겼다. 그게 당연하지 않은가?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면 적들은 하나씩 제거된다. 길은 뚫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벨수록 적은 더 많이 몰려온다. 앞에서만이 아니다. 뒤에서, 옆에서, 심지어 하늘에서도 떨어진다. 장벽은 과연 나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가늠하는 시험대일까? 절실하면 어떤 장벽도 무너뜨릴 수 있는 걸까? 장벽이 무너지면 추구하는 것에 한 발 더 가까워지는 걸까?
목표나 목적지라는 것은 과연 존재할까? 인생의 99.99999%는 그곳을 향해 가는 길 위의 시간이지 않은가. 지금보다 백 발을 더 가면 더 좋은 삶일까? 지금보다 수억 발을 더 가면 몇십 배 더 행복할까? 혹시 말도 안 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사의 후예들 가운데 이름을 남기는 이는 선두에 선 한 사람뿐이다. 그를 따르던 수많은 이들은 잊힌다. 타인에게도, 자기 자신에게서도.
길 위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억겁의 세월 속에 반복되는 지루함을 견딜 수 없다. 지금에 살지 않으면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에 저당 잡힌 삶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실행이, 루틴이, 생각이, 의지가 지금에 스미지 않으면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
글을 내려놓고 생각을 내려놓고 책을 내려놓는다. 의식 안으로 들어가 보려 애쓴다. 감정과 감각과 생각을 멈추고 심장 어딘가에 있는 고요함으로 들어가려 한다. 보일 듯 보이지 않고 만져질 듯 만져지지 않는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데 왜 둘처럼 느껴질까? 내 인식은 몸일까, 마음일까? 의식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전사의 후예를 자처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하지 않음으로 하는 것만이 본래 주어진 자유로 돌아가게 한다. 자기계발서는 종종 자기를 한계에 가둔다. 어떤 고난과 역경도 결연한 의지로 행동을 반복하면 성공이라는 미지의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 가능하다고 믿고 반복을 멈추지 않으면 결국 성공에 도달한다고 한다. 그들은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보면서 쓰고 있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코끼리의 발과 꼬리, 몸통과 코만 따로 만지고 있다. 어쩌면 코끼리는 전체로 인식될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코끼리는 이런 것이라고 자기만의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말한다. 너희는 아직 공부도 수련도 부족하다. 경험과 공부를 많이 한 내 말을 들어라.
삼라만상은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잘려 나간다. 언어로 건져낸 것보다 건져내지 못한 부분이 훨씬 많다. 언어는 성긴 그물에 불과하다. 그물로 물고기는 건질 수 있어도 바닷물은 건질 수 없다. 거의 전부가 언어 밖에 있음에도 언어로 모든 것을 다 이해한 듯 말한다. 언어가 이 정도라면 안으로 새겨진 언어, 즉 생각은 어떻겠는가? 언어 이전의 인식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전문가 전성시대에 산다. 건강 전문가, 관계 전문가, 투자 전문가가 세상에 넘쳐난다. 그러나 의사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내지 못하고, 관계 전문가는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하며, 투자 전문가는 투자의 허상만을 퍼트린다. 삶은 누구에게도 종속되어 있지 않다. 인생의 비책은 밖에서 찾을 수 없다.
원래부터 우리에게 주어져 있었다. 다만 바깥이 시끄러워 들리지 않을 뿐이다. 바깥의 소음을 차단하고 안으로, 더 안으로 들어가야겠다. 그래야만 비로소 바깥을 알 수 있다. 언어가 아니다. 생각도 아니다.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