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관련 연수를 하다 보면 이따금 근원적인 의문이 고개를 든다. 우리가 경제를 공부하고 지식을 쌓는 이유는 결국 더 잘 살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물론 지식이 쌓이면 돈을 벌 확률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지식이 늘어나는 만큼 행복의 총량도 비례해서 늘어날까? “아는 것이 힘”이라지만,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인 순간들이 삶에는 분명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딜레마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미리 알게 되었을 때다. 전세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앞으로 2년 뒤 전세 공급이 줄어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는 흐름을 읽어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당장 집을 매수할 자금이 없다. 이 사실을 몰랐다면 남은 2년은 평범하고 안락한 우리 집이었겠지만, 사실을 알아버린 순간부터 이 공간은 '시한폭탄'이 된다.
매일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며 “2년 뒤엔 어디로 가야 하나”를 고민하게 되고, 뉴스에서 전세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차라리 몰랐다면 어땠을까?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적어도 주거 불안이라는 유령에 시달리지 않고, 가족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막상 그날이 닥치면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월세로 전환하든, 조금 좁은 곳으로 옮기든, 아니면 그때 마침 생긴 뜻밖의 기회로 문제를 해결하든 말이다. 미리 알았다는 사실이 2년치의 평온함을 앗아가 버린 셈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지인 중 유독 날씨에 예민한 사람이 있다. 그는 주말 산행을 앞두고 일주일 전부터 기상청 예보를 분석했다. “오후에 비 올 확률 60%, 풍속이 강하니 조심해야 해.” 그는 산행 내내 하늘을 살피느라 찌푸린 얼굴이었다. 정작 비는 오지 않았지만, 그는 구름의 이동을 감시하느라 산 중턱에 핀 꽃도, 정상의 상쾌한 바람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반면, 아무것도 모르고 “비 오면 좀 맞지, 뭐!”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오른 사람은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설령 비가 쏟아졌더라도 젖은 옷을 짜내며 컵라면을 먹는 추억 하나를 더 만들었을 것이다. 과도한 정보와 걱정이 오히려 여행의 즐거움을 삼켜버린 경우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선행 학습’을 강요한다. 노후 파산, 인구 절벽, 자산 가치 하락 등 수많은 데이터가 현재를 위협한다.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행을 가불해서 현재의 행복을 지불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무지가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때로 그 당시의 상황과 지혜로 부딪혀 해결하면 그뿐이다. 인간에게는 생각보다 강한 회복탄력성이 있고, 위기 상황에서 발휘되는 임기응변의 능력이 있다. 2년 뒤의 문제는 그때의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노련해진 내가 해결할 것이다. 미래의 나를 믿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과도한 지식과 생각은 종종 우리를 겁쟁이로 만든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그 안에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도 함께 숨겨져 있다. 미리 걱정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하기보다, 지금 내 앞에 놓인 따뜻한 밥 한 끼와 사람들의 온기를 느끼는 것에 전념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일 수 있다.
삶은 완벽하게 예측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도 뚜벅뚜벅 걸어 나가며 겪어내야 할 과정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미리 걱정하기보다 그때 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