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문을 나서면 마주하는 풍경이 있다.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무심코 지나치던 세계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잠시 호흡을 고르면, 그제야 그들의 모습이 들어온다.
높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단정한 모습의 향나무, 겨울에도 붉은 열매로 존재감을 알리는 산수유나무가 보인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팽나무, 벚나무, 회화나무, 복자기, 중국단풍, 공작단풍,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나무가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선을 고정하고 바라보는 짧은 순간, 익숙했던 풍경에서 새삼스러운 생명력을 느낀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그동안 내 주변을 얼마나 자세히 들여다보았을까?’ 식물과 동물뿐만이 아니다. 생명이 없다고 여겨지는 무생물, 예컨대 건물은 어떨까? 자세히 보면 그것들 역시 자신만의 형태가 있고, 고유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단순히 기능적인 쓰임새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그렇고, 그 옆의 시청이 그렇다. 식당, 미용실, 은행, 네일숍 같은 공간들도 마찬가지다. 편의를 위해 존재하지만, 사람들의 흔적과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우리는 늘 주체의 입장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것에만 익숙해져, 대상이 가진 고유한 존재감은 놓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굳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형태를 가진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할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공간과 시간의 이동에는 늘 수많은 대상이 함께한다. 눈을 감고 세상을 느껴보자. 우리의 인식을 구성하는 시간과 공간,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물과 공간을 배제하고는 머릿속에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어렵다. 공간은 존재의 배경이 되고, 시간은 그 존재가 변화해가는 과정이 된다.
시간과 공간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나’라는 존재를 확장해 주는 매개체다. 오래된 존재와 내가 연결되고, 미래의 가능성이 시공간을 통해 지금의 나와 이어진다. 이는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타인을 돕는 길이 나를 돕는 길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세상이 복잡해 보이고, 상황이나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마음이 투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좋지 않은 일이 외부에서 오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내 마음의 표정에 따라 외부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 현재뿐만이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지나간 과거의 의미조차 다르게 해석되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영화 [아바타]의 대사, “나는 당신을 봅니다(I see you)”를 떠올려 보자. 이 말은 단순히 눈으로 본다는 것을 넘어, 상대의 본질을 깊이 인식하고 존중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 태도를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생명체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매일 마주하는 사물과 풍경에 존중과 애정의 마음을 보낸다. 세상을 향한 따뜻한 관심 없이는 온전한 평안에 닿기 어렵다. 건강도, 관계도, 부도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깃들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내가 만나는 모든 존재를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대하는 것, 그런 마음이 모일 때, 세상은 조금 더 살 만한 곳이 된다. 주변은 본연의 생기를 되찾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한결 평온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