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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리다

by 긴기다림

운동과 음식은 건강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운동이 20%, 음식이 80%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운동보다 음식이 더 많은 영향을 준다고 믿어 왔습니다. 최근에 운동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운동은 육체적인 컨디션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컨디션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비슷한 수준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음식이 20%, 운동이 20%, 마음의 평화가 60%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상증세가 나타나는 대부분의 원인은 나쁜 식습관이나 운동부족에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마음에서 걱정, 두려움, 미움 등의 감정을 덜어내기 시작하고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몸 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마음과 몸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면 건강은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음이 지옥이면 운동을 하고 음식을 조절한다 해도 병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입니다. 건강을 위해 안과 밖 모두에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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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과학 관련 책들을 보면 중요한 내용은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심오한 내용은 어려운 단어와 문장이 동원되는 것 같습니다. 철학, 과학의 정수는 원래 난해한 걸까요? 난해해야지만 철학, 과학의 정수를 담아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플라톤, 칸트, 비트겐슈타인, 마르크스의 책을 보면 한 번에 이해되지 않습니다. 도교, 유교, 불교 관련 책들을 봐도 다르지 않습니다. 깊은 생각을 불완전한 언어에 담으려 하니 어쩔 수 없는 결과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이젠베르크, 아인슈타인, 파인만, 힉스 등의 책을 봐도 이해력의 한계를 느끼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불확정성의 원리,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초끈이론 등의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과학적 지식이 터무니없이 척박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철학이나 과학이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도 아닌데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삶의 언어로 접근하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도 철학과 과학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일까요? 선택받은 사람만이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거대한 세상을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함을 선택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만 복잡해도 어디선가는 충돌할 것이고 그렇게 생긴 문제는 다른 복잡함을 양산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연쇄반을 일으키면 세상은 매일이 할리우드 영화일 것입니다. 세상의 작동 원리가 단순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세상은 온전치 못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원리에 접근한 사람들이 선택한 언어의 난해함에 있을 것입니다. 철학자의 언어, 과학자의 언어들이 일반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음에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지식과 정보는 핵심적인 지식과 정보의 교차설명, 부가설명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언어가 가지는 한계를 보충하는 기재로도 작동하지만 난해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계급적 분리를 자행하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철학과 과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난해함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을 우리가 꺼려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난해함의 이유가 나의 노력의 부재가 아니라 ‘대상(철학, 과학)이 접근 불가능한 곳에 있다’는 쪽이 자존감이 훼손되지 않는 방향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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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을 돈의 형태로 보유하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녹아내리기 때문에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고 합니다. 돈이 계속해서 늘어나기에 돈의 형태로 보유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보유한 돈의 가치는 떨어진다고 하는 말은 이제는 상식이 됐습니다. 돈보다는 가치 하락의 속도가 느리거나 가치가 상승하는 자산으로 교환해 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있습니다. 2년간의 금리 상승으로 돈의 가치가 계속해서 상승하는 시기에는 돈을 자산으로 바꾸기도 어렵지만 굳이 바꾸지 않아도 크게 무리가 있지는 않습니다. 현금 부자는 이때 평소보다 가치가 하락한 자산을 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금리가 계속해서 상승하는 시기에는 자산에 대한 비용이 점점 부담이 됩니다. 배고프면 먹을 수 없는 금덩어리보다 떡 하나가 더 간절합니다. 굶주림의 시기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무엇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는 시기가 오래 지속되면 인플레이션 헷지에 강한 자산보다 현금(현금성 자산)이 더 중요합니다. 이때는 일시적 돈맥경화로 자산을 헐값에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합니다. 자산이 중요한 때가 아니라 자산의 소유권을 방어할 수 있는 현금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돈(현금성 자산)을 보유하는 것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닌 것처럼 투자에서도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릴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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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에서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육체의 단련됨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신력으로 행동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국대경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구호이기도 합니다.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정신을 집중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반대 상황도 많습니다. 고강도로 단련된 육체는 정신력의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합니다.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사람이 하프코스를 힘들이지 않고 완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단련된 육체는 정신력을 고갈시키는 단계까지 이르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정신력과 육체를 어느 쪽이 리드하는 지의 관계로 파악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력이 약하면 가지고 있는 육체적 능력의 반도 쓰지 않고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몸의 한계가 100이라고 해도 60∼70의 정도를 일상적으로 견뎌내는 것에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에 정신력은 국대급인데 육체능력은 유치원 수준이라면 동네 경기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는 어렵습니다. 정신력과 단련된 육체는 서로의 능력 최대치까지 올려줄 때 효용을 다합니다. 그 이상으로 끌 어린 것은 특정한 몇 번의 기회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한쪽이 월등하다고 따라오지 못하는 쪽을 끌고 가는 것은 육상선수와 일반 사람이 2인 3각 경기에서 한편이 되어 육상선수가 자신의 속도에 맞춰 일반 사람을 끌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하겠지만 결국은 둘 다 지치고 맙니다. 한쪽이 월등하다고 다른 쪽을 자신의 속도에 맞춰 끌고 갈 수도 없지만 끌고 가서도 안 됩니다. 진정한 윈윈은 월등한 쪽이 그렇지 못한 쪽의 최대 능력을 끌어내고 유지하게 할 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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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립니다. 계속 맞는다면 변화는 없습니다. 세상의 동력은 변화입니다. 변화가 없다는 것은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모습일 때 우리는 이때를 변화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좋지 않을 수도 좋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모습을 만남으로써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갑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들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해도 그리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유연함으로 변화의 리듬에 올라탈 때 세상은 나를 위한 놀이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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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함을 잃지 않는 매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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