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바닥을 발로 힘껏 찼다. 그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리를 쭉 폈다가 구부리니 바람을 가르며 더 높이 날아오른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그네는 멈추지 않았고 그 평화로운 흔들림에 나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여름의 끝자락을 들이마시며.
나긋나긋해진 그넷줄에 머리를 기대고 하늘을 바라본다. 아기 손바닥 같은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하늘. 더 세게 발돋움하면 그곳에 갈 수 있을까.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서 밀듯이,
향단아......'
서정주 시인의 <추천사>에 나오는 춘향이가 되어 향단이를 불러본다. 산호도 섬도 없는 하늘로 밀어 올려 달라고.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
내가 그네라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된 건 10살 때였다. 외삼촌 댁이 사직공원 근처여서 그 집에 가면 원희(외사촌)와 공원에 놀러 갔다. 그 애는 공원 놀이터에 그네가 비어 있으면 무조건 달려가서 탔다. 동갑이었지만 나보다 덩치도 컸고 다부진 여자아이였다. 그네 탈 때도 앞뒤로 반원이 그려질 정도로 높이 올라가는 아이라, 옆에서 보는 나는 걔가 떨어질까 봐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혜승아, 이리 와. 같이 타자. 태워 줄게.''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그네로 갔다. 한 개의 그네에 나는 앉고 그 애는 마주 보고 섰다.
''이제 간~다.''
예쁜 미소를 지으며 소녀는 신이 난 듯 다리를 구부렸다 펴기를 반복하여 천천히 그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 느끼는 속도감과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에 신이 났지만, 그 순간도 잠시, 원희의 몸은 하늘을 향해 점점 높이 오르고 있었고 나는 허공으로 내던져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 해지는 공포가 밀려들었고 눈에선 눈물이, 목에선 외마디 비명이 나왔다.
그러나 원희는 살살 타자는 내 간절한 마음도 무시한 채 점점 더 높은 하늘을 향해 가고 있었다. 기어이 나는 큰 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놀란 억척 쟁이는 서서히 그네를 멈췄다.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한동안 앉아 울음을 멈춘 후 퉁퉁 부은 눈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렇게 내 어린 시절의 그네는 극심한 공포의 상징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할 때 참으로 후회스러운 일은 딸들이 초등학생일 때도 마음껏 뛰놀게 하지 못한 것이다. 그때 나는 타이거 맘으로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했다. 꽉 짜인 일정들을 소화하느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게 변명이다.
왜 그렇게 앞만 보며 바쁘게, 급하게 몰아쳤는지. 엄마 노릇이 처음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다. 초등학생 때 안 놀면 도대체 언제 놀아보나.
그나마 아이들에게 자유의 시간을 주는 것은 가끔 놀이터에서 그네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 둘을 앉혀 놓고 번갈아 힘껏 밀어주었다.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안쓰러워했던 마음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것은 그 아이들에게 작은 자유였으리라.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과 푸른 하늘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그 남루한 자유.
언제였던가 딸들이 중학생 무렵이었던 것 같다. 늦은 밤 아파트 구석진 곳에 그네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그네에 앉아 칠흑 같은 밤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삶의 무게를 담은 책가방을 어깨에 지고 그넷줄에 머리를 기댄 채. 그 까만 하늘에서 앞이 안 보이는 고통을 본 것일까.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듯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입시지옥이라는 버거운 현실을 피해 갈 수 없는 곧 닥칠 우리 아이들의 자화상 같아 그날의 그네는 밤새 나를 뒤척이게 했다.
어느덧 대학생이 된 딸들, 아이들이 집에 내려오면 우리 가족은 야간 드라이브를 한다. 상사호를 한 바퀴 돌고 오다가 휴게소로 향한다. 호수가 마주 보이는 곳에 가족용 그네 두 개가 생겼기 때문이다. 요즘에 내가 좋아하는 아지트다. 사람들이 붐빌 때 가면 그네는 내 차지가 안된다. 그래서 늦은 밤,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가 좋다.
주차를 시키고 조명 사이로 멀리 보이는 그네를 본다. 흔들리지 않고 있다면 속도를 내 걷는다. 세명 정도 앉으면 딱 맞다. 아이 둘을 양옆에 앉히고 등받이가 있는 편한 그네에 깊숙이 들어앉는다. 아이들의 건강한 다리로 끌어올리는 그네에 몸과 마음을 맡긴 채, 까만 하늘을 하얗게 수놓은 별들을 헤는 별치기 소녀가 된다.
한창 중국어에 빠져있는 옆 의자의 남편 핸드폰에서 등려군의 노래 '월양대표아적심'이 흘러나온다.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냐고 물으신다면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 말해줄 거라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가...
나의 그네는 어린 시절 공포의 대상으로,
젊은 엄마로서는 안쓰러움으로 다가온다.
지금 중년의 아줌마에게 그네는 평화로운 안식, 휴식 같은 친구이다.
마음이 시끄러운 날, 집 앞 공원 그네의 마법에 빠진다. 요람 속의 아기가 되듯,
가볍게 흔들어 재우던 엄마의 손길을 그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