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7일 차
"띠리리리~~"
오늘은 러닝 7일 차다. 준비운동을 하고 러닝을 시작한다. 숙련된 러너들이 새벽 러닝을 하고 있다. 나도 천천히 속도를 올리고 달려본다.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걷는 할머니를 만나고, 수다 3인방도 만난다. 민소매 할아버지와 등산복 부부도 운동할 때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여인도 만난다. 그것도 웃는 얼굴로.
나만 그런 것일까? 원래 가지고 있는 의심증도 있지만, 하도 흉흉한 세상이라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러닝을 한다는 게 무서울 때가 있다. 아무도 없어서가 아니라 누가 있어서다. 운동을 하며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보기엔 별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새벽에 어슬렁 걷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뉴스에 나오는 '묻지 마 폭행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닐까 염려하면, '별 걱정도 다 한다.'라며 노파심이라고 치부당한다. 하지만 나만 예외일 수 있나.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가끔 뒤돌아보며 러닝을 한다.
이런 나의 마음에 여유를 주는 여인이 있다. 그는 혼자 핸드폰으로 무엇인가를 들으며 걷는다. 그러다 지나치는 사람들을 만나면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등산을 할 때 들었던 인사를 새벽 러닝 하면서도 듣다니 생경한 느낌이다. 처음 인사할 때는 얼떨결에 '안녕하세요'라고 답하고 나서 마음속으로 '왜 나한테 인사하지?'라며 의심을 했다.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밝게 웃으며 접근하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지 않은가. '신천진가?'라고 의심했다. 저렇게 인사하며 안면을 트다 '도에 관심이 있냐'라고 물어보는 것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뒤돌아보니 그 여인은 흥겹게 몸을 흔들며 걸어간다.
다음날도 그 여인을 만났다. 여전히 핸드폰으로 무엇인가를 듣는다. 아직 종교적 색채가 지워지지 않은 상태인지라 핸드폰에서 나오는 소리가 설교 같기도 했다. 눈이 마주치자,
"안녕하세요?"
라고 웃으며 인사하다. 그러곤 또 흥겹게 몸을 흔들며 걷는다. 그의 과한 인사가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운동을 나온 B도 '아는 사람이야?'라고 하는 걸 보면 과한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새벽마다 그 여인을 만나게 되었고 내 기준에 과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오늘은 그 여인이 보이지 않는다.
"너무 T야. 그것도 대문자 T."
늘 듣는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그런 것 같다. 주고 싶은 마음이 받고 싶은 마음으로 변한다. 안 그래도 둔한 감각이 더 둔해지는 것 같다. 상대의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표현도 잘 안 하다 보니, 할 때마다 어색하다. 아는데 고치기 어렵다. 그래서 '갱년긴가'라며 퉁치고 넘어가버린다. 상대에게 밝게 웃으며 먼저 다가갔던 적이 언제였던가. 의무적인 미소로 장착된 얼굴엔 더 밝게 웃으려는 근육이 예전에 소실된 듯하다.
이승우 작가의 <고요한 읽기>라는 책에는 '그 방에서 나오는 순간 다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어떤 사람은 두려워서 그 방을 나오지 않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타성'이라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나를 생각한다. 그 방이 편하기도 하고, 나가면 '불편한 것들 투성이'라 쉽게 나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에서 나가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러닝은 편안함이 넘쳐나는 방에서 나가려는 시도다. 타성에 젖지 않으려는 능동적인 몸부림이다.
매일 인사하는 그 여인이 보이지 않자,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아침에 운동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게 뭐 그리 이상하다고 의심했을까 하는 미안함이 생긴다.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나서서 친절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필요에 따라 친절하기도 하고 불친절하기도 했던 내 행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도 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본래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적기도 하고, 사람을 상대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대문자 I'를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절대적 환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실천이 되지 않을 뿐이다. '냉대와 부분적 환대'의 방을 나가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러닝인지 도를 닦는지 모를 러닝을 하고 있는데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그 여인이다! 오늘은 늦잠을 잤나? 운동이 마무리될 즘 마주친 그녀는 여전히 핸드폰으로 무엇인가를 들으며 경쾌하게 걷는다. 그 여인은 인사를 하는 것은 자신이 원해서고, 인사를 받는 사람은 받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미련 없는 뒷모습을 가지고 있다. 나에겐 없는 모습이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은 기다림과 미안함을 담아 정성껏 답해본다. 웃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인사는 하겠다. 내일은, 아니 다음엔 내가 먼저 인사를 하겠다. 새벽마다 만나지는 사람들과 간단한 눈인사를 먼저 건네보는 내가 되어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 운동도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