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춘남 이야기

by Eun

부릉부릉~~~ 끽!! 틱!

"아이고, 춘남 씨 이제 퇴근하시는구먼. 시계야 시계. 어쩜 이렇게 매일 제시간에 출퇴근할 수 있단 말이야. 거 참! 암만 봐도 성실한 총각이라니까~~"

경비 할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퇴근한 길춘남을 살갑게 반긴다.

"아~네. 일용직 노동자가 뭐 할 일이 있나요? 퇴근하면 바로 집에 와서 자야죠. 그래야 내일 또 일하죠. 하하"

"그래그래~ 허허. 아니 근데 이 사람아~ 또 술을 사 가는가? 일하고 왔는데 따뜻한 밥을 먹어야지. 매일 저녁마다 술을 마시면 속 버리네."

길춘남은 소주가 든 검은 봉지를 등 뒤로 살짝 감추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밥이 밥 해주는 여자를 만나라는 이야기가 되고 결혼해야지가 될 것이다. 얼른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한 길춘남은 '그럼~'이라는 고갯짓을 하고 걸음을 옮기다 경비실 맞은편 평상에 앉아있는 김선아를 보고 멈칫한다.

"쯧쯧, 참 안 됐어. 또 싸우고 난리가 났네. 저 양반은 술 마시고 집사람 패는 대회 나가면 1등 할 인간이야. 귀신은 뭐 하나 저 인간 안 잡아가고... 선아만 불쌍해.. 어린것이... 쯧쯧"

경비 할아버지의 말을 듣던 길춘남은 '그러니까요~'라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천천히 김선아를 쳐다보았다. 아직 겨울은 오지 않았지만 저녁은 제법 쌀쌀했다. 이런 날씨에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쪼그려 앉은 선아의 하얀 다리가 달빛에 빛이 났다. 선아의 하얀 다리를 보던 춘남의 눈망울도 살며시 빛이 났다.

"멍멍~~ 컹컹~ 컹컹~"

"희망아, 이리 와. 죄송... 합니다...."

'선아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 '희망'이구나. 희망이라....'

길춘남은 자신을 향해 짖는 희망이의 붉은 코끝과 주둥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흘러내리는 침을 보며 그리고 쭉 뻗은 하얀 선아의 다리를 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때는 짙은 파랑이었던, 지금은 칠 벗겨진 하늘색의 지붕이 있는 건물 입구로 춘남이 걸어간다. 입구 오른편 우편함은 오픈형이 된 지 오래다. 입구의 왼쪽은 거울이 있었던 흔적만 있다. 그래도 경비 할아버지가 청소를 하시니 계단은 먼지가 없다. 길춘남은 술병이 든 검은 봉지를 흔들며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오른다.

"나가!! 나가서 술 사 오라고, 이년아!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시끄러워~ 제발 좀 그만해. 술이랑 원수 졌냐? 곱게 처먹어."

계단을 오를수록 101호 선아네 싸움 소리가 커진다. 201호에 사는 춘남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춘남은 평정심을 찾으려 과하게 큰 숨을 쉰다.

"뭐라고? 이 년이... 야! 어디 가? 이 문 안 열어? 술 사 오라고.. 술 사 와!!!"

"악~~~ 으악~~ 철썩!!! 퍽!!! 윽!!!!"

2층으로 올라가던 춘남의 발이 멈춘다. 꽉 쥔 손이 살짝 떨린다. 눈에 흰자위가 도드라진다. 심장박동이 더욱 거세지고 얼굴이 붉어진다. 입모양이 기이하게 삐뚤어진다. 춘남은 오랫동안 101호 현관문을 강렬한 눈초리로 째려보다가 발소리가 들리자 빠른 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간다.

춘남은 씻고 세탁기를 돌린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돌리고, 검은 봉지에 술을 꺼내 상에 차린다. 라면 한 젓가락에 소주 한 잔, 햇반을 라면 국물에 말아먹으면서 소주 한 잔. 그렇게 소주 2병이 비워지고 있다.

와장창!!

"그래 이 여편네야. 오늘 끝장을 보자. 딸년은 어디 갔어? 에미나 딸년이나..."

101동 싸움이 오늘따라 길다. 날카로운 까마귀 울음 같은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제발 그만... 이제 그만 저 입을 닥쳤으면 좋겠다. 춘남은 남은 라면 국물을 한 입에 털어 넣고 소주 한 병을 따서 입에 털어 넣었다.

오늘따라 길다. 오늘따라...

'제발 이제 그만..... 조용히 해. 제발.... 닥치라고.. 닥쳐! 닥쳐!'

소주를 들이붓는 길춘남의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심장박동이 더 빨리 뛴다. 얼굴은 장미보다 붉다. 콧구멍은 커져서 터져버릴 것 같다. 참을 때까지 참았다. 이제는 더 이상 못 참는다. 그러니 이제 그만 저 망할 입 좀 닫아줬으면 좋겠다. 입에 걸레를 처넣든지 때려서 기절을 시키든지 해서...

'아니며 입을 찢어버리든지 키키키.....'

순간, 소주병을 쥔 손이 멈칫한다. 동공이 커진다. 공기의 흐름이 멈춘다.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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