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

by Eun

유리의 엄마 안사영은 3살 때 보육원에 버려졌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라는 엄마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보육원 사람들이 혹시나 싶어 안사영이 맨 가방을 뒤졌을 때 '죄송합니다'라는 쪽지를 발견했다. 그래서 알았다.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안사영은 보육원에서 자랐다. 보육원의 환경은 열악했기에 모두 안사영을 반기지 않았다. 눈치가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보육원에 살면서 안사영이 배운 한 가지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배고프고 고달픈 나날이 계속되었다. 안사영은 살기 위해서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 안사영은 원장이 없을 때마다 부엌에서 먹을 것을 훔쳤다. 학교에 가서는 친구들 가방을 뒤져 돈을 훔쳤다. 그리고 그 돈으로 보육원에 돌아가기 전 분식집에서 입이 터지도록 빠르게 떡볶이를 사 먹었다. 원장은 안사영보다 눈치가 더 빨랐다. 안사영은 교정실로 끌려가 강목으로 맞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학교 선생님에게 도둑년이라며 따귀를 맞았다. 조금 더 자라서는 처지가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친구를 협박해 돈을 뜯어낼 무렵에는 아예 보육원을 나와 가출팸에서 지냈다.


유리의 아빠 이대두는 강원도 산골에 살았다. 대대로 머슴집안에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다. 아버지는 왼손이 없었는데 술을 마시고 작두질을 하다가 손을 잘랐기 때문이었다. 이대두는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를 원망하며 살았다. '왜? 왜 내가 아니고 동생이었을까? 도망갈 거면 둘 다 데리고 가지 왜 동생만! 왜!'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자식을 어떻게 키우는지 몰랐다. 학교에 가면 가나 보다, 오면 오나 보다 생각했다. 느지막이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각자 자신의 방으로 숨어들었기에 대화다운 대화도 없었다. 대두는 자랄수록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게 불안했다. 이대로 아버지처럼 살다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도시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대두는 아버지 방을 뒤져 돈을 훔쳤다. 그리고 희망을 가득 안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제 자신에게는 희망찬 미래만 있을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안사영과 이대두는 도시의 밤거리를 배회하다 만났다. 소매치기를 하고 도망가던 안사영을 숨겨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 뭔가 그럴듯한 인연도 아니었지만 그들은 너무 외로웠기에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어렵게 백만 원을 모아 백에 월세 오만 원짜리 지하 단칸방을 얻었을 때가 열여덟이었다. 먹고사는 것이 제일 중요했고, 잠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서로를 불쌍하게 생각했고, 아무 해준 것 없는 세상을 증오했다. 배려가 뭔지, 정의가 뭔지, 존중이 뭔지도 모른 채 어른이 되어갔다. 손해를 보면 절대 참지 않고 싸웠고, 공짜라면 악착같이 달려들어 하나라도 더 얻었으며, 돈 되는 일이라면 간도 쓸개도 없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 유리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당연해 보였다.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데 매달 돈이 모자랐다. 돈이 조금 모일라치면 술 마시고 시비를 건 대두의 합의금으로 들어가곤 했다. 곗돈을 모을라치면 계주가 돈을 들고 튀기도 했다. 자신들을 호구로 알고 돈을 빌린 뒤 배 째라고 갚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사영과 대두는 왜 자신들에게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 채 눈앞의 현실을 살아내기에 급급했다. 단지 세상이 희한하고, 사회가 자신들을 따돌리고, 나라가 자신들을 챙겨주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맘이 편했다. 마음껏 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리를 밀었다. 빚독촉에 시달려서, 돈이 필요했는데 막상 나올 돈은 없어서 밀었다. 자신들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도 많았다. 세상을 탓하고, 나라를 탓하고, 사회를 탓하면 자신들은 잘못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차가 지나갈 때 유리를 뒤에서 밀쳤다. 좁은 골목을 꺾던 외제차바퀴가 유리의 오른 발등 위로 지나갔다. 유리는 입원했고 그들은 합의금을 받았다. 그들은 계획이 매끄럽게 성공한 것을 좋아했다. 유리는 젊으니까 금방 발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들도 그렇게 컸기 때문에 유리가 힘들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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