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이 끝나고 있다. 역시나 미처 실천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이제 한 해가 끝날 때마다 드는 이러한 후회는 응당 그러려니 한다. 반복되는 자기반성과 내년을 위한 다짐들도 되풀이되어 질린다. 이러한 행위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나만의 의식 또는 이렇게 말이라도 해서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보려는 넋두리에 불과하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후회는 되돌리고 싶다. 과거의 후회되는 순간으로 돌아가 내 삶에 오점을 지우고 싶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껏 했던 노력과 결과는 또 잃어버리기 싫다. 그리고 생각할수록 살아봤던 삶을 다시 산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오히려 이 삶을 다시 살아야 한다는 사실만으로 지치는 기분이다. 그럼 어떻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심리학자 루이스 헤이는 '과거를 포기해야 오늘을 얻을 수 있다'라고 했다. 아직 남은 오늘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과거의 삶을 부정하며 괴로워하기보다는 자기 결정에 후회하지 말고 진심으로 내가 원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과거를 만약이라는 낚싯바늘로 붙잡고 곱씹으며 후회해 봤자 소용없으니 마음을 비우라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은 내가 원해서 결정한 것'이라는 자기 결정인데, 이것이 자칫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자기방어적인 성격인 자기기만으로 빠질 수도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 편협한 변명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루이스 헤이의 말처럼 마음을 비우고 오늘을 사는 것이 제일 좋긴 하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비우지 못한 감정들이 연말 통장에 차곡차곡 쌓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성인이 아닌 이상 이 가정은 진실에 가깝다.) 마음에 박혀버린 후회들이 만약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고질병처럼 오래되어 비우기 어렵지는 않을까? 매년 새로 살아가는 삶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 번이 아니라 매년의 반복이고 그러면 삶은 갈수록 더 무거워지는 것 아닐까?
얼마 전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선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무의미하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라고 했다. 이 말은 만약이란 내 삶을 뺀 나머지에 해당되어 그 부피만으로도 무겁지만, 삶은 단 한 번 뿐이니 그 무게를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만약과 비교하여 삶을 정의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만약이라는 것을 뺀다면 삶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다.
끝나가는 한 해를 돌아보며 과거를 정리하는 지금, 만약을 가정하지 않으니 삶은 의외로 평탄했다. 내 삶에 만약이라는 단어 하나만 빼면 그저 단순한 일상의 반복일 뿐이다. 앞으로는 후회로 한 해를 마무리하지 않고, 가볍게 바라봐야겠다. 그리고 계속 가벼운 삶을 살기 위해 오늘은 가까이하고 나의 결정을 믿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