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받고 펑펑 울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처럼 키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키웠다.
그렇다고 낳자마자 그렇게 키운 건 절대 아니다.
이론으로 알고 있는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언어와 행동은 최대한 하지 않았다.
어릴 때 난 너무 많은 부정적인 말과 욕설은 기본이고, 수고했다는 말은 책에서만 존재했다.
칭찬은 인색한 집이었다. 어쩌면 칭찬하는 법을 모를지도 모른다.
누구나 이론은 대부분 알고 있다. 중요한 건 실천이지.
행동으로 한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가끔 부모 교육 강의를 들을 때면 대부분 사람은 그런다.
알고 있다고.
학생들도 수업 시간이나 시험 볼 때 알고 있는데 틀렸다고들 한다.
이론으로 알고 있는 거 같으나 실제로 문제 풀 때 안 풀리면 그건 모르는 거다.
어른도 부모도 마찬가지 아닐까?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않는 건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론으로 안다고 진짜 아는 건 아닌 거 같다.
나도 무슨 생각으로 실천을 시작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처럼 키우지 않겠다는 그 맘이 커서 실천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이 실천은 너무 잘 시작한 거 같다.
예를 들면 (흔히 알고 있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설거지하고 있는 데 6~7살 정도의 아이가 와서 엄마한테 할 말이 있다던가 뭔가 원하는 게 있다.
엄마는 설거지를 빨리 해치우고 싶다.
아이는 계속 옆에서 엄마 옷을 잡아당기며 보챈다.
여기서 아마 대부분 엄마는 그런다.
"엄마 설거지하는 거 안 보여? 있다가 해."
혹은
"엄마 설거지부터 하고. 기다려."
라고 들 할지도 모른다.
그럼, 부모 교육에선 어떻게 설명하냐.
설거지를 잠시 멈추고, 아이와 눈을 맞춘 다음
"엄마 설거지 끝내고 얘기하면 안 될까? 지금은 너에게 집중을 못 할 거 같아. 조금만 기다려주면 엄마가 집중해서 잘 들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기다려줄 수 있겠니?"
이렇게 말을 하면 대부분 아이는 기다린다고 한다고 말을 한다.
정말이냐고?
정말이다.
실천해보니 그랬다.
실천한다는 건 어마무시한 거였다.
나도 교육들은 후 아이가 설거지하는 데 왔었다. 순간 맞다! 하는 생각에 실천했다.
난 고무장갑을 벗어 걸어두고, 몸을 숙여 아이와 눈을 맞췄다. 난 아이들 어릴 때부터 진심을 담아 실천했고 지금 두 아이는 중학생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실천 중이다.
"엄마가 설거지 끝내면 네 얘기 집중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엄마 빨리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겠니?"
그러자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네.”라고 했다.
"고마워. 엄마 마무리할 동안 편하게 있을래? 끝나고 엄마가 가서 얘기 들어줄게."
아이는 너무나 협조적이었다.
당연히 설거지 마무리한 뒤엔 아이에게 제일 먼저 갔다.
나란히 앉아서 눈을 맞추고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해서 들었다.
호응도 해주면서 고개도 끄덕여주고.
이렇게 하니 아이와의 대화는 더 잘됐다. 아이도 얘기하는 기술이 늘어갔다.
결론만 얘기하던 아이가 과정부터 자세히 말하는 아이로 변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많은 정성과 진심을 담았다.
부모 교육 서적에 나오는 내용들도 실천하면서.
여기저기 부모 교육이 있으면 거의 다 들었다. 물론, 반복되는 내용도 많다. 그래도 들었다.
추천하는 책이 있으면 메모했다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아마 그때부터 나도 책이란걸 읽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나 학생 때 난 왜 책을 멀리했을까?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안 했고, 읽어야 하는 이유를 몰랐던 거 같다.
책이 사람을 많이 변화시키는 것도 모르고.
지금 내게 부모 교육을 의뢰한다면 내 경험으로도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다. 지금도 노력 중이다.
내게 지금까지 잘한 게 뭐냐고 물어본다면, 내 아이들을 낳아서 내가 줄 수 있는 마음을 주면서 키우고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결혼을 잘한 거냐고? 그건 별개의 문제다. 아이를 잘 낳은 거 같다.
아니 아이들이 내 인생에 선물로 와준 거 같다.
결혼은 말 그대로 점점점.
두 아이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주고 있는 거 같다.
큰딸은 자라면서 무뚝뚝해지긴 하지만, 진심은 느껴진다. 표현을 잘하진 않지만, 맘이 느껴진다.
둘째 아들은 감정이 풍부하다.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아이로 커 주고 있다.
내가 봐도 맘이 참 따뜻한 아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살면서 두 아이에게 감동하면서 살고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내가 너무 힘들 때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힘이 날 때가 있다.
딸이 7살 때의 일이었다.
난 딸이 7살 되는 해부터 한글을 가르쳐주었다.
내 생일날이었다. 내 생일은 음력 10월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이 방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내 생일이라고 해도 거하게 하지 않는다. 케이크를 먹으며 축하 노래를 들었다.
사실 이 정도도 감사할 일이다. 두 아이가 손뼉 치며 노래불러줄 때 내 맘은 감동으로 아렸다.
그 순간 너무도 감사한 시간이란걸 알기에.
난 결혼 전까지 내 생일날 제대로 축하받아본 적이 한두 번 되나?
나중에 알았지만, 내 또래 사람들도 생일날 케이크는 먹어보고 자랐더라.
난 전혀 아니다. 꿈도 못 꿀 일이지. 케이크는 먼 나라 음식이었다.
미역국 끓여주면 감사하게 먹었고, 미역국 못 먹는 날도 있었다.
내 생일인 걸 아무도 몰랐던 거지. 나도 말을 안 했고.
친구들? 진짜 친구가 있었던가?
생일 축하받는 또래 아이들을 보면 부러웠다. 집으로 초대하는 아이도 부러웠고 초대받은 적도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선물도 못 사 가는데 어떻게 가?
다른 아이들은 보란 듯이 짠하고 선물을 내밀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성인이 되어도 동기들한테도 생일이 되면 말 안 했다.
난 늘 축하해주는 입장이었지 축하받는 건 나랑 멀고, 내겐 어색한 일이다.
결혼 후, 남편이 생일날 미역국 끓여주고 케이크도 먹곤 했다.
그때의 생일은 잊을 수가 없다.
딸이 방에서 뭔가를 하더니 나와서 내게 편지 봉투를 건넸다.
"뭐야?"
난 봉투를 받으며 딸에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편지."
딸은 큰 선물을 주듯 내게 건넸다. 딸에겐 큰 선물을 준비한 건지도 모른다. 큰 선물이 맞고.
딸에게 받은 첫 생일 편지.
그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한 생일 축하 편지였다.
편지를 읽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길지 않은 글이지만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쓴 글자.
맞춤법이 틀리기도 했지만, 꾹 눌러쓴 흔적이 보였다.
생일 축하해요.
엄마 태어나 줘서 고마워요.
엄마가 태어나서 우리가 태어났어요.
엄마가 내 엄마라서 고마워요.
하트와 꽃 그림도 함께 그려져 있었다.
펑펑 울었다.
그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
신랑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내 부모였던 사람들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늘 내가 태어난 게 죄라고 생각했는데.
난 세상에 없었어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7살인데. 내가 태어나줘서 고맙단다. 내가 엄마라서 고맙단다.
난 한 번도 꽃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꽃도 같이 그려줬다.
생화보다 더 살아있는 꽃이었다.
신기한 건 아이의 진심이 느껴졌다.
잊을 수 없는 말이었다.
내가 펑펑 울자 딸이랑 아들이 와서 날 안아줬다.
아들은 5살. 내가 왜 우는지 영문도 모른 채 날 안아주고선 같이 울었다.
나 정말 애들 잘 낳았구나.
이 애들 내가 지켜야겠구나.
내 삶의 이유를 만들어준 두 아이.
내 삶의 감동인 두 아이.
내 생일날을 진짜 생일날도 만들어준 두 아이다.
지금은 중학생인 두 아이.
가끔 감동은 준다.
어렸을 때와는 다른 형태지만 그 진심은 여전하다.
지키고 싶다.
내 두 아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