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달? 4달?

운동장 1/4 바퀴 뛰기 시작하는데

by 쉼이되고싶은 나무

거울 속의 나의 큰 몸매가 째려본다.

"그동안 많이 투자했네. 초등 4학년 때부터 살이 붙기 시작했으니. 이야~ 몇십 년을 이 몸에 투자한거야? 집을 몇 채는 샀겠다. 이젠 좀 버려야 하지 않겠니?"

라고 거울 속의 내가 야단친다.

그렇다.

이젠 버려야 할 때다.

그동안 많이 투자했지.

맞다. 집을 사도 몇 채를 샀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돈은 나의 몸에 투자한 건가? 그 결과로 이렇게나 큰 몸매가 되지 않았던가!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에 걷는 앱을 설치는 벌써 되어있다.

부끄럽지만, 어떤 날은 걸은 500걸음. 조금 걸었나 싶으면 2000?

이건 말이 안 된다.

내가 기어 다니거나 굴러다니지 않는 이상 이렇게 걸음 수가 적을 수가 없다.

밤에 핸드폰 첫 화면에 있는 걸음 수를 보면 내가 놀란다.

거짓말이야. 이럴 수가 없어.


1년 됐나?

딸이 "엄마, 우리 피xx 하자."

"응? 그게 뭔데?"

"이거 걸음으로 꽃도 심고, 캐릭터도 키우고 하는 거."

사실 난 시큰둥했다.

딸이 보여주는 캐릭터가…. 조금…. 귀엽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해볼까? 걷기도 하고.

그날 딸이랑 같이 앱을 설치했다.

또 한 번 부끄럽지만, 설치했다고 바로 몇만 걸음 걷고 그런 일은 없었다.

정말 많이 걸어서 10,000걸음 넘긴 적도 있긴 하다.

사람이 처음 마음을 잊지 않고 쭉 가면 다들 성공하겠지?

어언 1년 동안 별 차이 없었다.

그러다가!!! 거울 속의 내가 날 째려보면서 말하는 게 내 가슴을 쿵! 하고 쳤다.

진짜 이번엔 해야 한다!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못 할지도 모르고 이 큰 몸매를 평생 안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랑 이사 오기 전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공원이 있어 같이 걸었다.

처음 시작은 항상 좋다.

작심삼일이라고 했던가? 그냥 생긴 말은 아닌 거 같다.

점점 날씨가 추워지고 이런저런 핑계 만들기 시작했다.

둘이 하다가 한 명이 하지 않으면 배신하기 싫어 같이 하지 않게 된다. 맞다. 핑계다.

그렇게 몇 달 했지.


다행인 건 아들이 주짓수를 하고 있다.

아들 운동 갈 때 같이 나가서 나는 나대로 걷다가 아들이랑 같이 들어온다.

딸이 안 걸어도 다시 한번 맘잡고 난 걸었다.

뛸 용기는 없었다. 큰 몸매로 뛰려니 사실 겁이 나기도 했고 걷기부터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 산책로를 왕복해도 2킬로 미터?

오르막이라 한번 왕복하면 30분 정도 걸렸다.

무슨 맘인지 두 번은 하기 싫다는….

또 핑계를 대자면 공원 산책로가 세 명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길이고, 양쪽으론 나무들이 빽빽하다.

저녁 7~8시면 여름은 밝은데 여름 지나면 금방 어두워진다.

그 시간엔 사람도 없다.

양쪽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부는 바람은 왜 그리 공포영화 속 바람 소린지.

가로등은 왜 그리 띄엄띄엄 있는지. 이런 곳에 예산 좀 쓰지. 환해야 안 무섭지.

왕복 두 번은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렇게 4~5달 정도 한 거 같다.

맘처럼 살도 쑥쑥 빠지면 좋으련만. 역시 현실은 가혹해!

몸무게는 거의 유지? 늘지 않은 게 다행인 듯.

세상에나! 옷 치수가 조금 줄었다!!! 쫄티가 아닌 옷을 쫄티처럼 입곤 했는데 어라? 조금 여유가 생겼다!

오~~~. 이것이 운동이라고 말하긴 부끄럽지만, 나름 부지런히 꾸준히 걸은 결과인가!!!

기분이 좋다.


이사를 했다. 지금 이사한 지 8개월 됐다.

윗동네에서 아랫동네로 왔다.

여긴 평지다.

교통이나 환경이 윗동네보다 조금 좋다.

이사하는 과정은 참…. 어휴…. 한숨 천지지만 어찌 됐건 말건 이사를 했다.

좋은 건 평지기도 하고 근처에 운동장이 있다.

실제 축구 경기를 하는 운동장이다.

아침과 저녁엔 개방한다.

딸이 내게 그랬다.

이사하면 아들 운동가는 시간 같이 나가서 운동장 돌자고.

딸이라서 믿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도 맞다.

흥! 운동은 무슨!

이사하고 나도 정신없었고 이런저런 일도 겹치고.

안 좋은 일은 왜 그리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오는지.

감당할 수 있게 조금씩 오지.

누가 그러더라.

그만큼 좋은 일이 올 거라고. 진짜? 믿어도 돼? 제발….


한여름.

밖에 나서면 후덥지근함이 몰려드는 시기. 집 밖은 위험한 시기.

조금만 더 있다가 걷기 시작할까? 아니다.

정말 큰맘 먹고 운동장 걷기 시작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날 맞이해준다. 저녁 시간에도 변함없는 후덥지근한 바람. 바람은 지치지도 않나.

시원한 물을 큰 통에 챙기고 수건도 챙겨서 운동장으로 갔다.

운동장 입구에 들어서는데 깜짝 놀랐다.

가만있어도 땀나는 이렇게 더운 날 사람들이 가득했다.

운동장은 총 8라인이다.

1~3라인은 뛰는 사람 그 외는 걷는 사람이다.

이 더위에도 뛰는 사람이 엄청났다. 걷는 사람은 어떻고.

내가 보고도 이 많은 사람을 믿을 수가 없었다. 대회 나가는 줄.

솔직히…. 제정신이 아닌 사람 같았다.

나만 있을 줄 알았다. 하하하.


나의 큰 몸매를 자랑하면 놀랄까 봐 반소매 티에 칠부바지를 입고 왔다.

물통을 한쪽에 놔두고 심호흡 한 번 했다.

'걸어볼까?'

우와~. 운동장 한 바퀴가 500미터 정도란다. 겨우 500? 체감은 5킬로 미터인데???

한 바퀴 도는데도 헉했다.

내가 공원 산책로 걸은 건 아무것도 아닌 거였다.

결심했다.

적어도 5바퀴는 쉬지 않고 걷자고.

무더위 속에서 걷기만 하는데도 땀이 어찌나 나던지.

많이 걷자는 마음에 8라인 끝에서 제일 크게 돌면서 걸었다. 그래야 맘이 뿌듯하니까. 나의 욕심에. 하하하.

5바퀴. 생각보다 길었다. 한 바퀴 걷는데 6분? 내 결음이 느리긴 한가 보다.

5바퀴 돌고 뿌듯한 마음에 물 여러 모금 마시고. 카 한 번 해주고. 땀도 닦고.


사람들을 둘러봤다.

뛰는 사람들 대단했다.

옷이 땀으로 젖었고 몸에도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헉헉거리면서 뛰는 모습이 멋졌다.

어르신들도 삼삼오오 이야기하며 걸으시는 모습이 멋졌다.

아이들과 뛰는 부모들도 있었고, 마라톤 모임도 있었다.

학생들, 말 그대로 남녀노소 다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자신을 위해 운동하는 게 놀라웠다.

다행인 건 그 속에 나도 이제 포함이라는 게 조금은 뿌듯했다.


거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걸었다. 최대한 빠지지 않고. 빠지는 날도 있긴 하지.

그렇게 4~5개월을 걸으면서 시간도 재고 조금씩 시간 단축하자는 욕심이 생겼다. 걸음도 신경 쓰고 빨리 걷기도 하고.

역시나 맘 같으면 나의 큰 몸매는 반쪽이 되어야 한다.

세상은 냉정하다.

잊고 있었다. 내가 먹는 것도 있다는걸. 먹는 게 줄었나? 모르겠다. 워낙 잘 먹어서.

뛰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뛰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맘은 그 사람들 옆으로 가서 같이 뛰었다.

나의 맘이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아직 아니야. 좀 더 걷는데 익숙하면' 하면서 내 정당화와 핑계 만들면서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 꼭 한 바퀴 다 뛰라는 법 있나? 내 나름대로 정하면 되는 거 아닌가?

우선 1/4바퀴 뛰어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얼마 전 드디어 운동장에 들어서면서 결심했다.

오늘은 한 번이라도 1/4바퀴라도 뛰어보자고.

시작은 5라인에서 했다. 걷다가 뛰는 라인으로 들어가기 좋아야 하니까.

한 바퀴는 망설이면서 걸었다. 내 마음 안은 전쟁이었다.

뛸까? 걸을까? 수없이 왔다 갔다가 하면서.

뛰는 사람들 보면 그래, 뛰자! 하는 용기가 나다가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 바퀴째 심호흡하면서 걷는다.

나름의 시작 선을 찾고 끝 선을 만든다. 딱 1/4바퀴.

욕심부리지 않고 시작하자! 할 수 있다! 날 응원하면서 조금씩 3라인으로 들어섰다.

내가 정한 출발선에 다 와 갈 때 외쳤다. 뛰자!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왔는데 실제로 뛰었다.

당연히 빠르진 않다.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내가 뛴다! 내가 뛰고 있다! 나도 뛸 수 있구나! 우와!

1/4바퀴 뛰는데 생각보다 거리는 괜찮았지만, 내 숨은 괜찮지 않았다.

조금씩 차오르는 숨.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뱉는다는 숨쉬기.

걸으면서 수없이 그렇게 해왔고, 뛰는 이미지 트레이닝하면서도 연습했는데.

역시 이론과 실전은 달랐다.

조금씩 나의 입은 벌어지면서 들이마시는 것도 입으로 하게 됐다.

숨 쉬는 속도도 빨라지면서. 1/4 내가 정한 끝이 다 와 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1/4바퀴는 뛰어야지. 힘내자. 할 수 있다.

점점 차오르는 숨으로 1/4바퀴 뛰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1/4 끝에 도착했다. 다시 5라인으로 자리를 옮겨 걸으면서 숨을 골랐다.

남들은 그 정도로 뭘 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난 뿌듯했다.

뛰기 시작했으니까.

늘 날 바라봐주고 있는 하늘이 그 순간은 잘했다고 날 쓰다듬어주는 거 같았다.

잘했어! 숨을 고르는데 1바퀴가 걸리네??? 웃겼다.

첫날은 그렇게 1/4바퀴 한번 뛰었다.


몸이 가벼워진 거 같았다.

목표를 정했다.

조금씩 늘이기로.

뛰는 한 걸음을 실천에 옮기는데 3달? 4달이 걸렸다.

해냈다.

조금씩 횟수를 늘렸다.

뛰기 시작한 지 사실 1주 됐나?

운동장 걸으러 가는 맘이 점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평일 운동장 안 가면 허전하다.

누가 보면 선수인 줄!!!


지금은 6바퀴 기본으로 걷는다. 그중 매 바퀴 1/4바퀴 뛰는 거로.

조금씩 뛰는 거리를 늘여갈 거고 1바퀴 뛰어도 괜찮게 만드는 게 우선 목표다.

내 몸에 맞춰 차근히 꾸준히 할 거다.

아직 몸무게가 확 줄거나 하진 않는다. 조금 줄었다가 원상 복귀되었다가 반복이다.

먹는 게 있으니 더 늘지 않는 게 다행인지도.

먹는 양도 줄여나가기로 했다. 소식하는 여자로 만들기로!!!

카~ 내 맘 같아선 44사이즈 입고해야 하는데. 아 웃긴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옷의 여유가 느껴진다. 기분 좋다.


아직 내가 작은 몸매로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투자한 살들을 많이 버려야 하는 거 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란 것도 안다.

내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아직 앞이 캄캄하기만 하다는 것도 안다.

길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도 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찾는 중이지만.

꾸준히가 모든 걸 이긴다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산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거란 것도 안다.

아니 믿는다.

더 늦기 전에 그걸 알게 된 것에 감사한다.

나의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나 애쓰고 있다.

나 뛰기 시작했잖아!

할 수 있을까로 가득했던 내 마음이 나 뛴다로 바뀌었잖아.

뛰려고 맘먹고 뛰기 시작한 그 시간 헛된 거 아니잖아.

내 인생도 한 발 내디뎌보자.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니까.

이젠 그만 망설이고 한 발부터 내딛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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