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기적적으로 봤다
2월 말쯤이었던 것 같다.
주말에 친구네가 통도사를 갔단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주차도 멀찍이 했단다. 통도사 입구부터 사람들이 몰려있어 지나갈 수가 없었단다.
3천년만에 ‘우담바라’가 통도사에 피었단다.
응? 우담바라? 꽃이란다. 난 상상했다. 우담바라도 꽃숭어리처럼 피어있을 줄 알았다.
안 봐서 모르지만,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단다.
3천년이라. 사람들은 이런 정보를 어떻게 빨리 어디서들 알게 되는지 대단하다.
식구들한테도 우담바라 얘길 해줬다. 딸이 저녁에 통도사 우담바라 찍은 영상이 올라왔다며 보여줬다. 이런! 꽃숭어리가 아니었다. 강아지풀처럼 한 가닥이 있는데 아주 작았다. 모여서 피는 것도 아닌 듯했다. 3천년만에 피는 우담바라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전설이 있다나? 그래서 그렇게 사람이 많았나 보다.
다음날 비가 많이 왔다. 아이들은 방학 기간이었다.
오전에 일보고 집으로 왔다. 아들이 갑자기 “엄마, 우리 우담바라 보러 갈까?” 응? 지금?
시간이 오후 2시가 다 되어갔다. 밖엔 비도 많이 왔다. 요즘 아들이 가끔 갑자기 어디 나갈까? 바람 쐬러 갈까? 한다. 그럴 땐 거절할 수가 없다. 같이 나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해서 그 시간이 나랑 아들에게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통도사 입장이 몇 시까지인지 알아야 했다. 5시까지 들어갈 수 있다. 집에서 가는데 1시간 30분 정도. 비가 오니 더 걸릴지도 모른다. 나의 실력으로 봐선 길도 잘못 갈 가능성이 있기에 2시간은 잡고 가야 한다. 우담바라가 어디 있는지도 검색해봐야 했다.
통도사 안 여덟 군덴가 있단다.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사진들을 봐도 어딨는지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대부분 어디 부근이라고만 해놨다. 실제로 가보면 그 나무를 어떻게 찾을지.
오케이! 무조건 가보고 본다. 난 계획 없이 바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늘 그런 건 아니다. 계획이 필요할 땐 계획을 세우고 간다. 무계획이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줄 때도 있다. 우담바라를 볼지 못 볼지는 나도 알 수 없다.
3시쯤되었다. 최대한 빨리 출발했다. 비가 많이 왔다. 나름 오전 11시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니, 오전에 우담바라 보러 왔다가도 비가 오니 사람들이 많이 줄었을 것 같았다. 도착하면 5시쯤이니 더 사람이 없을 거로 생각하고 아들과 둘이 출발했다. 가면서도 혹여나 못 보더라도 실망하지 말자했다. 맘은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비로 인해 차들의 속도는 느렸지만, 도착하니 4시 30분쯤 됐다.
주차장도 한산했다. 사람들이 안 보였다. 이 정도로 없으면 곤란한데. 여전히 비도 스멀스멀 온다. 다른 곳보다 온도가 더 낮은듯했다. 우박도 왔다. 비가 내린곳에 살얼음이 되기도 했다. 바람이 꽤 차가웠다. 주차하고 통도사 안까지는 5분? 가는 길에 몇 명을 만나 물어봤다.
“혹시, 우담바다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우담바라요?”
모른다는 표정이었고, 모른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약간의 불안함을 가지도 우린 가던 길을 갔다.
하루 전인 어제만 해도 사람이 넘칠 정도로 많았다는데, 오늘 온 사람들 우담발라 보러 온 거 아니었나? 절 안에 들어서니 전문가의 포스가 풍기는 작가인지는 모르지만, 전문가가 가지고 다닐만한 카메라를 설치해둔 채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들 있었다.
통도사에 우담바라랑 홍매화가 핀 시기라 그런가 보다. 홍매화 매력적이었다. 시선이 사로잡힐만 했다.
절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모녀분을 만났다.
“저 혹시 우담바라 어딨는지 아실까요?”
“우담바라요? 입구에 있는 건 떨어졌고, 저기 모퉁이 쪽 벽에 있어요.”
어찌나 다행인지! 드디어 우담바라를 아는 분을 만났다. 말해준 장소로 가봤지만 어딨는지 알 수가 없다.
사진 찍는 여자분에게 물었다. 작가의 포스가 느껴져서 분명 알 거라는 기대로 물었다.
“우담바라요? 그거 여기 아닐 건데.”
“네? 방금 만난 분이 이 근처라고 했는데요.”
“글쎄요. 모르겠네요.”
아들과 눈이 마주친 난 당황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 순간 내가 뒤로 돌아봤다. 아! 오늘 우리는 우담바라 볼 운명이었나보다.
돌아서 본 기둥에 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기다!
아들과 당황한 눈빛에서 심봤다라고 외칠 눈빛으로 바뀌었다. 한걸음에 달려갔다. 역시 있었다. 세 가닥의 우담바라에서 아우라가 퍼졌다.
사진 찍는 장면을 못 봤다면 우담바라를 못 찾을 수도 있었다. 너무 작았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안 보면 안 보일 정도였다. 운이 좋아 우리가 본 기둥엔 세 가닥이 있었다. 다른 일곱 군데는? 여기서 어떻게 찾을수 있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다.
만약 절 입구에서 모녀분을 못 만났다면?
뒤돌아봤을 때 우담바라를 찍고 있는 부부를 못 봤다면?
이 넓은 통도사 안에서 이 많은 기둥에서 어떻게 우담바라를 찾을 수 있을까?
통도사 그 어디에도 우담바라의 위치를 알려주는 곳은 없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직접 발로 뛰어서 찾아야했다.
아들과 한참을 봤다.
3천년만에 핀 우담바라를 보다니! 감격스럽긴 했다.
아들과 빗속을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우린 우담바라를 볼 운명이었던 거지. 모녀분과 부부께 감사했다.
알고 보니 이날도 오전부터 사람이 많았단다. 비가 와도 이미 보러온 사람들로 복잡했단다. 사람들이 다 눈으로만 본건 아닐 거로 생각한다. 벌써 떨어진 우담바라가 있다고 하니.
쉽게 떨어질 거 같진 않아 보였다. 몇 번 만진다고 떨어지지도 않을 것같이 보였다.
사람들이 많이 만졌겠지? 이기적인 사람들도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게 눈으로 보면 좋을 텐데.
나랑 아들도 눈으로 감상 많이 하고 왔다.
아들이 우담바라 앞에서 살짝 말하는 걸 들었다.
“볼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나랑 같은 마음이었구나. 못 봤으면 아쉬워했겠구나. 같이 볼 수 있어서 감사한다.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3천년만에 핀 우담바라도 뿌듯하겠지? 긴 시간 기다렸다가 화려하지 않게 티 안 날지도 모르지만, 그런 우담바라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기다림의 시간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그 누구 한 명 크기에 실망하지 않고 얼굴에 미소를 띤다.
그런 존재로 살아보고 싶다.
날 보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질 수 있는 삶을 위해 진실하게 살아야지.
아들과 우담바라를 볼 수 있게 된 모든 상황에 감사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