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의심이 늦어졌을 뿐

오롯이, 나

by 숙희달



나는 나만의 촉이 있다.

눈치를 보며 자란 탓에 생긴 감각인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사람의 의중을 비교적 잘 읽는 편이었다.

말보다 먼저 분위기를 느끼고,

변화에 먼저 반응했다.




그런데

유독 어떤 관계 앞에서는

이 감각을 스스로 배제했다.


주변에서는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의심하지 않는 것이

더 옳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어느 순간부터

작은 변화와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생겼다.

하지만 아닐 거라는 믿음으로

모든 촉을 덮어두었다.


확인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나는 묻지 않았거나,

묻더라도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잃은 상태였고,

무언가를 더 잃을 용기가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의심을 미룬 대가는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는 것을.


그 이후로 나는

의심을 불신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의심은

상대를 밀어내는 태도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감각이라는 걸

늦게 배웠기 때문이다.



의심은
관계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한
가장 조용한 신호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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