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나
나는 나만의 촉이 있다.
눈치를 보며 자란 탓에 생긴 감각인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사람의 의중을 비교적 잘 읽는 편이었다.
말보다 먼저 분위기를 느끼고,
변화에 먼저 반응했다.
그런데
유독 어떤 관계 앞에서는
이 감각을 스스로 배제했다.
주변에서는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의심하지 않는 것이
더 옳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어느 순간부터
작은 변화와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생겼다.
하지만 아닐 거라는 믿음으로
모든 촉을 덮어두었다.
확인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나는 묻지 않았거나,
묻더라도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잃은 상태였고,
무언가를 더 잃을 용기가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의심을 미룬 대가는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는 것을.
그 이후로 나는
의심을 불신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의심은
상대를 밀어내는 태도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감각이라는 걸
늦게 배웠기 때문이다.
의심은
관계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한
가장 조용한 신호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