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의미

by ㅎㅈㅇ

· 여행의 사전적 의미: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요즘엔 여행도 잘 다녀줘야 뭔가 좀 멋지게 사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산층의 요건 중 하나로 ‘1년에 몇 번의 해외여행’을 꼽는다고 한다. 그러니 단지 나의 주관적 생각은 아님이 분명해짐과 동시에 그렇게 여행 다닐 자신이 없는 나는 나머지의 요건들을 애써 갖추더라도 중산층이 되기는 어렵겠구나 싶다.


누군가 여행 얘기를 꺼내면 “우와 부럽다~” 하면서 호들갑을 떨지만 어느 정도는 화자와 공감대를 만들어 사회적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도 있음을 고백한다. 사실 나는 집에서 ‘세계테마기행’ 보면서 눈으로 하는 여행이 제일 좋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4도 간절히 기다린다. 그래도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진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긴 했지만 나에게 여행이란 간절한 무언가는 아닌 듯하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못 다닌 지도 1년 반쯤 돼서 여행과 더 멀어진 기분이다. 그래도 떠올려보면 마음에 남는 여행의 기억이 분명 있긴 하다.


(알파벳 네 글자 속에 나를 구속하기 싫지만) MBTI 테스트 결과 P지수가 엄청나게 높은 나이지만 그런 주제에 패키지여행은 선호하지 않는다. 관광버스에 몸을 맡기고 적당한 랜드마크들을 찍고 오면 편하긴 하지만 이끌려간 기념품 가게에서 사기는 싫고, 눈치는 보이는 그런 민망함이 여행의 여운보다 길게 남는다. 그래서 두루두루 다 들르기보다는 마음이 끌리는 곳을 느긋하게 찬찬히 둘러볼 수 있는 여행이 좋다.




국내에서는 강원도 정선이 좋아서 여러 번 다녀왔다. 한 번은 내가 정선으로 여행 간다니까 당시 같이 근무하던 팀장님이 시니컬한 말투로

“거기 가서 뭐어해애?” 라고 묻길래,

“고요하러 가요.”라고 대답했다.

분은 평소 잔소리가 많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고, 도대체 거기 뭐 할 게 있냐는 뉘앙스의 질문은 이미 답이 정해진 거라 딱히 실질적인 대답을 원한 것도 아니었기에. 돌이켜보니 우문현답을 한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어 진다. 이름도 참 예쁜 정선은 나에게 '고요함'으로 설명되는 도시다.


그곳에 가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과 약간은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든다. 어딜 둘러봐도 산. 그리고 또 산. 스스로 택한 유배지에서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정선아리랑이 왜 그렇게 구슬픈지 그냥 알 수 있다. 왠지 모르게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리고 머릿속에 전국 철도노선이 거의 다 들어 있는 철도마니아인 아들은 기차와 레일바이크를 타고, 심지어 기차를 개조한 펜션에 머물며 ‘철덕’으로서 최고의 만족을 얻는다. 그런 둘의 만족이 곧 여행을 계획한 남편의 만족.(우리남편은 파워J형 인간이다.)


사실 정선이 좋았던 이유 중에는 내가 여행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모두 충족됐기 때문도 있다. 그게 뭐냐 하면 1. 욕실이 깨끗한 숙소(욕실이 깨끗한 곳은 다른 곳은 당연히 깨끗하다.) 2. 좋은 날씨(비오는 건 싫다.) 3. 그리고 맛있는 커피. 이렇게 세 가지인데,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충족이 쉽지 않다. 특히 커피가 맛있는 집을 찾는 게 은근히 어렵다. 분위기 좋은 곳은 많지만 그런 곳의 커피가 꼭 맛있지는 않다.




그런데 운 좋게 저 세 가지가 모두 맞아 떨어진다 해도 민감도 상위 4% 안에 드는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쉽게 잠들지 못하고, 물이 바뀌면 피부도 평소 컨디션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삼시 세끼에 주전부리도 쉼 없이 해서 평소의 배는 먹는데…. 뱃속이 불편하다. 그러다 보니 3일 차부터는 본격적으로 집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아는 언니는 여행 가면 돌아오기 싫어서 남편한테 하루만 더 있자고 떼를 쓴다는데 나는 웬만해선 그렇게까지(어쩌면 전혀) 아쉽 지가 않다.


집에 돌아와 우리 집 욕실에서 익숙한 물의 질감을 느끼며 개운하게 씻고 섬유유연제를 하지 않아 약간 뻣뻣하고 보송한 수건으로 닦으면서 나오면 이 말이 입 밖으로 절로 나온 다.

“스윗 홈!!”


· 여행의 주관적 의미: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