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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파리 Aug 19. 2024

연기와 같이, 흔적 없이

8월 18일 (日)

2024년의 반년이 훌쩍 넘었다. 

작년 29살의 나는 시간이 너무 길고 길어 왜 이리 내 시간은 탄력성도 좋고 유연해서 지지부진한 일 년을 보내게 되는지

서러움 두려움 셀 수 없이 많은 후회를 하게 되는 이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지독히도 지나가지 않았을까.

29살의 사랑, 우정, 일, 마음 모든 것에서 이리도 하나 직선으로 곧게 그어진 것이 없었다.

무언가를 잃었다면 이 중 하나는 내게 ‘増’이 되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며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층의 보라색 동굴에서 흰 연기를 내뿜어내기 바빴다.

일정한 마음이란 무엇이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한 줄의 글이라도, 한 번의 만남이라도 하루 전체가 그로 인해 기쁨으로만 가득 찼던 날이 있었을까.

겉으로는 난 ‘특이’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진정으로 원했던 건 ‘특별’함이었으니.

허탈한 것은 ‘특이’의 “異” [이]  ‘특별’의 [別] 별, 특이와 특별은 한자 하나가 다르다는 것.

겨우 한자가 다른 것이 지금의 날 이렇게 괴롭게 할 무거운 돌덩이 일까.


음악 하던 시절부터 1년 전 과거에 이르기까지 ‘평범’ 하고 싶다고 외치고 다니는 ‘모순’ 자였다. 

삶은 평범하게 흘러가길 바라면서 동시에 특이하고 특별하고 싶음을 바라는 내 삶은 올바르게 흐르고 있는가.


어째서 이 고민을 비눗방울같이 투명하지만 산소조차 없는 투명한 구 안에서 

1년을 , 29년을, 평생을 한 치 앞도 모르고 살아가는가, 모두가 그런 것일까.


당면한 문제들에 손도 대지 못할 지경이 되었을 때, 다 내려놓아보려 했다.

친구, 사랑, 가족, 꿈, 나의 욕심들 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내 몸 안에 있는 두 마리의 해파리처럼 파도에 나를 뉘이고 흘러가는 삶을 지내보고자 했다.

삶의 방식이 개복치보다는 해파리에 성큼 가까워졌다.


사랑 같지 않은 사랑에 여러 번 실패하며 쉽게 되는 연애는 지나가던 사랑이 말했듯 쉽기만 했다.

소중한 마음, 아껴주고 싶은 마음, 미래를 그리게 되는 생각 등 진정 사랑할 때의 나를 볼 수 없었다.

그저 타지에서 걱정인형이 되어주길 바라며 만나던 이들에게 되려 내가 그들의 걱정인형이 되었기도 했다.


사람은 사람을 살리지만 사랑은 사람을 살리지 않는다. 

사랑은 나를 살려줄 것처럼 조금씩 스며들어오지만, 우유에 빠진 식빵이 더 이상 손으로 집어 지지 않듯

처참히 내 형태를 잃어버리게 하기도 했다. 나 자신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사람은 사람을 구하나, 사랑은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 사랑은 구원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내게는 해당 없음이다.


아물지 않은 감정과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건

자전거도로도 아닌, 일반 도로도 아닌 이가 나간 보도블록이 군데군데 빠진 곳을 

억지로 만들어 낸 네발자전거로 달리는 것이었다. 

네발 자전거는 잘 서있다. 움직이지 않을 때는 안정적으로 서있다.

그러나 달리기 시작하면 올바르게 두 발 자전거로 달리는 이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요란한 보조바퀴가 도로에 닿으며 내는 쇳소리, 드륵드륵거리는 소리 이처럼 소리만 요란할 수가 없다.

요령 없이 억지로 힘으로 굴려지는 자전거는 개운한 운동이 되지도 못하며 바람을 가로지르는 상쾌함도 얻을 수 없었다.


겨우 달려 보이고 말겠다고 멀쩡한 자전거에 이상한 바퀴를 달아 달리던 건 미련한 짓이었다.

차라리 걸어갔더라면 울퉁불퉁 고르지 못한 길에서 쓰러지며 다치진 않았을 텐데, 무릎이 깨지고 멍 투성이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한 페이지나 후회로 가득한 글을 적으며 이 불안함이 증발할지, 시각화된 후회가 나를 덮칠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타지 못하는 자전거를 보조바퀴를 욱여넣어가며 요란스럽게 끌고 다니고 싶지 않다.


조금은 가볍게 어리석지만 편하게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미련스레 깊은 정을 모두에게 주려하지 말자

투명하고 희게 넓게 퍼지는 담배연기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 싱그러운 존재가 되고 싶다.

내 눈에만 잠시 보이다 사라지는 담배연기처럼 남들에게 내 후회와 못남을 굳이 다 꺼내 보이기엔 후회가 더 늘어날 것.


가볍게도 웃음이 나는 나날을 보낼 수 있다. 그저 그것이 나의 요즘의 후회 없는 마음이자 내뱉어 사라지는 연기이다.

크게 도움 되는 사람도, 해가 되는 사람도 아닌, 그저 나로서 살아가기, 이것만 한 인생의 과제가 존재할까.


2024.08.18 in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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