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해파리가 되었는가 (1)
그런 이들을 가끔 만나지 않는가.
분명 같은 24시간의 하루를 살 텐데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한, 감탄을 넘어 경외심이
드는 사람들 말이다.
허나 본 글을 써나갈 ‘나’는 해파리보다 흔히 최약체의 본보기였던 개복치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지난 7년간 감히 죽도록 노력했다 적어본다.
20년 21년 난 모든 것을 차치하고 타국에서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남들보다 배는 빠르게 배는 많이 노력했다.
슬프게도 이룬 것은 없었고 이뤄내지 못했다.
세계를 뒤덮은 역병이 하나의 원인이었겠지만
나의 부족함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2018년부터 준비한 2024년까지 약 7년간의 미래는 그 노력과 도전들의 부산물까지 말끔히 없애버렸다.
더 버텨보고자 했다.
혼자의 삶도 타국에서의 삶도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명확히 ‘사람’ 들이다.
단 2-3년의 삶을 같이 한 나를 친구들은 진심을 담아 내 곁에 있어주고 웃고 울어주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한계에 부딪혀 떠나야겠다 마음먹은 순간 가장 먼저 계획한 건 소중한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전하는 일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떠남을 위한 한 달의 시간 안에 학교와 행정처리 국제이사 준비로 일주일간 혹사시켜서일까
39도가 넘는 열에 몸을 일으킬 수도 없어
돈 걱정에 타지 못하던 택시에 거의 드러누워
겨우 타국어로 대화하며 병원에 갔고
일반인의 600배가 넘는 염증수치에 목소리는 물론
손가락하나 걸음 하나 온전치 못했다.
4박 5일의 입원기간 내내 이틀을 꼬박 수액으로 연명하며 높은 열에 귀가 아파오기도 했다.
겨우 퇴원한 날의 병원 밖 날씨는 봄이 되어있었다.
정말 돌아감을 준비할 시간 밖에 남지 않아 있었다.
떠남을 위해 또다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