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방랑하고 방황하던 난 해파리가 되었는가
지난 4편의 글을 약 4년 전의 나를 기준으로 썼다면, 잠시 현재의 나를 이야기해 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가 되었다.
24살에는 30살의 지금을 기다렸다.
굉장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음악을 계속해서 하고 있을까, 아니라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단 하나 바라던 것은 지금의 내가 24살의 나보다 손톱만큼이라도 달라져있기를 바랐다.
천재가 아님을 10대 시절에 일찍이 알았다. 당시의 나를 가르치던 사람들에게 항상 듣던 말은
‘재능 없이 음악을 한다’였다. 비참하게도 사실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주변은 배우지 않고도 바이브레이션을 하기 위해 3주 동안 한 가지의 연습만을 반복하던 나와달리
곧잘 ‘노래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과, 남들보다 나은 외모를 가진 사람과 내게 없는 열정이라도 가진 이가 십 대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그 당시의 나의 재능은 ‘노력’이지 않았을까.
가장 먼 거리에 살고 있지만 쉬는 날 없이 매일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연습실에 내 목소리가 울리는 것조차 창피해
가장 끝방을 차지하려고 방학과 주말에도 학원의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출근하듯 했다.
어떤 이는 나를 성실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면서 자기 목소리도 듣기 무서워하냐
나를 가르치던 사람은 장난으로 말했겠지만 같은 나이를 지나 온 지금의 나로서는
음악을 평생 하고자 하루에 열 시간을 연습하는 10대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노력으로 음대에 진학한 후,
결국 평생 음악을 하겠다는 이번생의 목표는 거의 태우기 직전이다.
내 노래로 내가 행복하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
더 이상 미련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런 내게 처음 친구의 축가를 통해
약 10년 만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해파리라고 나를 칭하는 지금,
누군가가 내게 한 번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식에
그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노래를 부르는 일은 음악을 시작하며 꿈꾸던
노래로 사람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첫 기회였다.
그들은 내게 너무나도 고맙다고 했지만, 누군가 앞에서 노래한 날, 확실히 정리가 되었다.
더 이상 내게 노래는 순수하지 못한 감정을 가진 매체구나.
기술적으로 잘했든 못했든 단지 부끄러웠고 노래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 창피했다.
물론 즐거웠다. 행복하게 웃는 친구들과 손님들을 보면서
이게 남을 위해 부르는 내 마지막 노래일지도 모르겠다고 깊게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개복치를 가지고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온 아티스트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실들은 억측된 것이며
겨우 물의 온도가 갑자기 올랐다고 해서, 잠수부를 만났다고 해서
갑자기 죽어버릴 만큼 약하기만은 하지 않은 생물이라고 이야기하는 곡이었다.
‘별일 아닐 거라 했지’라는 부분이 계속 맴돌았다.
그래 사람들은 나를 억측된 개복치로 생각하지만,
진정한 난 혼쭐정도는 낼 수 있는 촉수를 가진 해파리가 되어간다.
겉으로는 몰랑하고 투명한 개체로 보이나, 그 안의 위력은 만지거나 직접 쏘여보지 않으면 모를 만큼
점차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능력이라는 찌릿한 나의 힘을 키우고 있다.
겉으로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게 할 것이다.
허나, 나의 진실된 모습은 이제 그렇지만은 않으려 한다.
다정하지만 나를 상처 입히면서까지 사는 삶은 이제 그만하련다.
녹아 없어지더라도 내 자신을 내가 뜯어내지는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