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해파리가 되었는가 (2)
퇴원 후 돌아 온 집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39도의 열에 정리는커녕 청소를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지긋지긋하게 본 가장 큰 택배박스에
4년간의 나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작디작은 9조의 방에서 12 상자의 박스만큼 짐이 나왔다.
가구와 큰 물건들은 모두 버리고 팔았지만 결국 마지막 날까지 한 박스를 더 보냈다.
4년의 시간을 지낸 타국, 3년간 지낸 방 모든 것을 치우고 먼지하나 없는 방을
문 앞에서 보았다. 참으로 텅 비어있었다.
그리도 좁다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5월에 서늘한 공기가 느껴질 만큼 썰렁했다.
집과 이별 후 4년간 마음을 나눠주고 또 받은 이들과의 각별한 작별인사를 보냈다.
많은 사람 중 일본어로 편히 말 한마디 못하던 내게 영어를 사용하며
하루하루 일본어로 말하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함께 돌아가는 전철에서의 1시간 동안 처음 드문드문하게 버벅거리던 일본어는
점점 농담도, 내가 반대로 한국말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철저히 혼자가 되었던 내게 보증인으로서 집을 빌릴 수 있게 해 주었어고
이유 모르는 따돌림에 강한 척하고 살아갈 때, 선뜻 연락해 나를 불러냈다.
나보다 먼저 취직활동을 시작하여 그 시간을 나눠줌에 사람을 다시 믿게 되었다.
친구와 마지막 추억을 쌓으러 간 곳은 바다를 유독 좋아했던 나를 위한
'에노시마'였다.
강한 바닷바람을 뚫고 약 15년 만에 수족관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모든 시선을 빼앗은 건 바로 가득 찬 해파리들이었다.
그들이 물속에서 유영하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그저 흘러가는듯한 움직임의 해파리들
큰 수조 안에서 홀로 움직임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물을 따라 유영하는 자태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조급함을 타고 앞으로만 가려하던 내 삶과
일말의 조급한이란 느껴지지 않는 그들을 보며, '저렇게 살고 싶다'라고 머릿속에 번뜩 각인되었다.
나의 고통과 지침의 원인은,
내게 주어졌던 삶 속에서의 물살과 파도를 거스르고자 했기 때문은 아닐까.
파도와 물살을 따라 흐르는 대로 살아 본 적 없는 지금까지의 삶을
물살에 조금은 몸을 맡기고 고민과 자책이 아닌 나의 성찰을 하고 싶어졌다.
해파리는 단순히 보기에 예쁘고 화려한 생물이 아닌,
어른이 된 후 내가 느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보자, 하고 알려주었다.
그 후 개복치에서 난 해파리가 되도록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