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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an 17. 2022

고양이가 귀여워서 나는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2020년 12월 2일

사자조차 물소를 혼자 잡지 않는다.

사자 중에 가장 겁이 많은 사자. 물소 중에 가장 용기 있는 물소. 서로 겁먹는 건 매한가지. 상호 목숨이 걸린 것도 매한가지.

겨울의 밤은 유독 짙고 어둡고 깊은 것만 같았다. 아차, 하고 막을 틈도 없이 뜬 새벽 해가 중천을 지나 사라지고 나면 영영 다음 날의 어스름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비집고 새어 나오는 표현에 대한 욕구. 글로써 내 감정을 모조리 늘어놓고 고를 수 없게 되어간다는 의미다. 이 좁은 틈으로 나오는 것들을 그저 받아 가지런히 정돈해두어야 한다. 잘 못 쌓은 테트리스 블록은 다음번 블록을 미리 알려줘도 놓을 곳을 찾지 못하게 한다.

긴 시간만에 펜을 들어 종이에 자모를 나열해서 편지를 써보기도, 가진 비루한 사랑을 콩 한쪽을 나누는 심경으로 떼어주기도. 밀린 일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처리가 되는데 밀린 마음은 갚을 수 없게 된다. 파산신청은 거취가 참 불안정한 나를 대신해서 대리인이 완료했다.

그 나잇대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 비슷하니까. 살아왔던 시기도 일치하니까. 하는 일, 즐겨하는 말. 입은 옷. 모두 비슷할 수밖에. 이 시대의 소년들을 한 번씩은 관통하여 한데 꿰어놓는 그 심미.

대충 아리다고 생각해. 한 겨울에 스케일링받은 날, 이 사이로 들어오던 찬 바람 같다고 생각해. 갑작스럽게 청한 도움에 응해서 무심코 들게 된 무거운 짐, 가까스로 내려놓은 후의 팔 같다고 생각해. 시린 이는 금방 본래 항상성을 되찾을 것이며 오늘 저린 내 팔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도덕적 만족감에 의해서 묵인될 것.

물을 계속 퍼담아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저 바다에 직접 들어가겠노라. 내가 결코 담지 못하느니 그 자체가 되겠다.

내가 심해 깊숙이 가라앉고 나면 근처의 모래를 삽으로 한 번 떠보자. 혹시나 금이 있을지도 모르니. 삽질 한 번으로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사실 나는 이 삽질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금보다 귀한 것은 맞잡은 손이니.

너는 그냥 시공간에서의 역할을 마치면 된다. 어렵다 어려워, 나의 시대와 나이를 관통한 흑발이나 고양이처럼 생긴 눈매 같은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숙제가 따로 없다. 난 선을 어디까지로 정할 건데? 본인인데 본인하고 합의가 안된다.

평소에 그렇게 귀여워하지도 않던 고양이는 오늘따라 유난히 귀엽다. 보고 싶은 얼굴은 없는데 기억은 소지품이나 주변의 환경에 사무친다.

목숨 걸린 일이 아니다. 하루분의 들숨과 날숨의 기분 정도는 걸려있다. 내일은, 모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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