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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an 18. 2022

너무 힘들 땐 이렇게 해보세요

2020년 12월 9일

이름을 불러주었다. 더할 나위 없는 표현법이었다.

글을 써놓고 몇 번 다시 읽어보면서 오탈자를 열심히 고쳐도 일주일쯤 후에는 꼭 오타가 눈에 들어온다. 시프트를 강하게 누르는 버릇 때문에 때, 는 종종 떄, 로 기록되었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

활짝 피어난 장미가 말했다. 그러나 누가 신경을 쓰겠는가? 내가? 웃겨. 내 손에서 피가 흐르는 한이 있어도 손아귀에 아름다움을 쥐겠다. 가시도 아름답지 않은가 너는. 그런 모습을 보면 죽고 싶어 진다. 언젠가는 꼭 황홀함 속에 죽으리라.

숨 한번 덜 쉬고 걸음 한번 덜 내딛는 수준 말고. 깔아놓은 삶의 레일을 전부 까뒤집어 새로운 길로 가는 방향성을 향해 손이 부르트고 망가질 때까지 증명할 정도의 각오. 갈비뼈 하나쯤은 빼서 레일 중간의 교차점을 놓을 정도로 터무니를 잃은 마음.

절정에 있는 가치 중의 하나라고 나의 마음속에서 미리 정했다. 왜 네가 배덕을 알지 못하냐면, 턱없이 모자라니까. 이가 없으면 이유식을 먹어야지. 눈과 머리와 심장의 위치를 뒤죽박죽으로 섞고 네가 눈으로 보는 곳과 머리로 지향하는 곳, 정말 가슴으로 열망하는 곳이 각기 다름을 깨달을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때에는 꼭, 약속할게.

삶의 책장은 매번 꼼꼼하게 읽을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 저는 더 읽고 싶은데. 하고 의사를 분명히 밝혀도 떠밀려 다음 페이지 내용을 알아야만 했다. 문단을 떼고 문장을 떼어내서 단어도 음절도 하나하나 쪼개 음미하고 싶던 나의 소망은 와르르 무너졌다.

밤이 깊어갈 때면, 재밌는 거 보고 흥미를 부르는 장편 드라마에 빠져 지내면 어떨까 했다. 마음을 대변해주는 노래를 찾지도 않고 녹아든 추상을 글로 해석하는 일도 없게. 그러면 차라리 나을 건데. 혼자 있을 때마 저 즐거운 사람이 되는 거. 골수까지 유쾌한 인간이 되는 거.

내가 꾸며놓은 방에서 종일을 보내면 부러울 것이 없다. 향, 온도, 밝기. 모두 내가 원하는 상태로 유지되는 세상. 언제나 단 한 가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마음뿐.

주말에 놓인 일을 치우고 언젠가처럼 아주 컴컴하고 조금은 더운 방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채로 잠을 잤다. 더는 졸리지 않아 살짝 깨어나도 남은 잠의 잔향으로 나를 더 재웠다.

내 아이폰 즐겨 찾는 사진 폴더의 사진이 3천 장에 가까워졌다. 지우개를 뜯어 던지던 학생 때의 장난처럼 무언가를 꼼지락대며 던진다. 너는 숨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던지라고 가져다 준건 나였고, 넌 이제와서는 그저 사진에 불과하니까.

3년? 혹은, 반년보다 조금 더. 두 시간 남짓한 통화로 드디어 관에 들어갔다. 사망을 선고해줄 의사도 없지만 눈을 감았으니 일단 집어넣고 봐야지. 꼭 네가 남긴 자상들이 시간을 죽였길 바라.


서글픔의 단조로움을 깨고자 부쩍 과일을 자주 먹는다. 과일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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