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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an 19. 2022

이때 나는 퍽 즐거웠던 모양이다.

2020년 12월 15일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담보한다. 어디서 들은 거지? 당당히 통과하는 말이었다. 새끼의 목덜미를 물어 장소를 옮겨주는 고양잇과 맹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앗,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어서 들어가시죠. 뻐근하게 물린 것이 나의 목덜미 일지 내 아가리를 통해 코까지 간질이는 네가 목에 뿌린 향수 내음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당당하고 꼿꼿한 패스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틀린 말이 아니다. 맞아야지. 실컷 맞아야지. 모났으니까. 낭중지추 마냥 좋은 뜻이 아닌 넌 불쾌한 돌출이니까. 내 모난 감정 또한 정에 찍혀 박살 날까? 통로에 위치한 장롱처럼 네 새끼발가락을 걸어 딱 부러지지 않을 만큼만 아프게 할 나의 모난 마음 말이야.

아주 오래전에, 개인의 삶 속 어딘가의 시점의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증거를 타인을 통해서 찾았다. 사회성과 학습, 타인에 의한 평가를 통해서 임의의 표본과 지표를 만들어 자존감을 찾고 존재 의의를 정의.

이번 겨울이 너희들한테 어떤 의미와 바람을 불러일으켰는지는 모르지만 심히 괴로운 십이월이 아닐 수 없다. 관계를 끊어낸 단면이 너무나 너저분하고 더럽다. 왜 날카롭고 예리하게 마음을 벼려놓느냐고? 이럴 때를 위해서였다. 구질구질하고 더러운 꼴을 가뜩이나 절절하고 속상한 이별의 순간에 목도하기 싫어서. 난 유쾌하고 싶었는데, 적어도 기억 속에서는.

내가 잠시간 대여한 마음들은 연체 없이 정확히 반납이 되었는데 왜 집까지 찾아와 흠을 잡고 다른 책을 내놓으라며 고집 피우는 것일까. 사실 방 한편에 내줄 책이 있었지만 차라리 그을러 불태우지 결코 주지 않으리.

누군가 나의 사랑을 다 알지는 못하셨지만 통찰력을 발휘해 말씀해주셨다. 밑바닥을 보이지 않는 연애와 멋진 이별을 추구하는 이상 진짜 사랑을 하지 못할 것. 맞다, 근데 누리는 그 순간의 의심을 지우면 그것은 진짜라고 난 생각했다. 너무나도 완벽한 가짜.

기대감을 들키는 일은 민망하다. 지나가는 아름다움에 눈이 돌아가는 것도. 시각적 자극에 꼴깍하고 마른침이 넘어가는 것도. 트리 밑에 놓인 박스가 내 생각과는 다른 크기여도. 나는 민망했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들켜도 미워한다는 사실을 들켜도 쥐구멍을 찾아야 했기에 차라리 미리 작은 부품 하나까지 모두 분해해서 모양을 숙지하는 편이 좋았다. 속이 편했다. 들켜도 아는 체할 수 있어서. 서툰 변호보다 능숙한 위증을 오히려 즐겁게 한 것 같아.

기대 이하, 예상 밖. 의 일들을 나열했으니 부디 내일이나 모레쯤의 나는 행복하길 바라면서 오늘 찾을 수 있던 행복을 되새긴다. 네 마음에 1을 두고 오면 요즘의 너희는 보답인지 무언가를 꼭 가져온다. 비슷해 보이는 언저리의 1이었지만 모양새를 보고 나서는 가져온 마음이 기특하다는 걸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낭만도 배워서 알아야 하는 아이. 왜 크리스마스에 캐럴이 울리고 꼬마전구들이 반짝반짝하는 곳에 가야 하는지, 생일 케이크 위의 초가 어떤 의미를 주는지. 함께 바다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 습득이 빨라서 좋다고 했다.


눈치가 빠르다는 말로 정의하고 싶지 않다.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이. 습관대로 스르륵 올라간 내 왼쪽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게 만들어 놓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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