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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an 28. 2022

분노는 내 삶의 원동력

2021년 2월 20일

더러운 이야기들. 하수도 같이 쏟아내는 너희 입. 결국 오염은 한 곳으로 모인다. 흘러 흘러 가장 낮은 곳으로. 아끼는 비누로 거품을 내 씻었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아래로 내리 모여 저 웅덩이에 빠졌다.

어떠한 종류의 이야기는 생각하기만 해도 양쪽 귀가 뜨거워진다.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 아닌  보면 사람들은 이런 체온의 변화를 열받음이라 일컫는 듯하다.

거짓을 몰랐던 때가 있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진실이며 그것은 명명백백히 개인이 검증해놓은 사실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초등학교의 놀이터  모래사장에서 나는 처음으로 거짓말하는 사람과 마주했다. 당시 나는 2학년 학생이었는데 놀이터에 본인이 3학년이라고 주장하는 아이가 나타났다. 나는  말을 곧대로 믿고 그날 놀이터에서 노는 내내  아이에게 형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며칠   아이를 다시  것은 다름 아닌 같은 학년만 있는 같은    교실에서였다. 나는 나를 의심했다. 나이는 많은데 학년이 같은걸까 하고. 그러나  친구는 나와 같은 나이였고 이후 같은 해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서열이라는 것을 늦게 깨우쳤다. 유치원 때 내가 싫어하는 김치도 다 먹어주고 오르막길을 오를 때 체구가 작은 날 업어주는 어떤 덩치 큰 친구가 있었다. 저의가 어떻게 됐건 체구를 이유로 선뜻 동갑 친구를 업고 다니는 모습이 친구의 어머니에게는 좋아 보일 리 없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에게 와서 따졌다. 같은 친구끼리는 동등하게 지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냥 자긴 힘이 세다며 나를 업어주었고 그냥 내가 김치를 남겼는데 밥반찬으로 쓴 친구가 괜스레 곤란해 보였다. 무엇보다 일곱 살의 인지능력은 단지 나보다 덩치가 큰 친구의 호의라고 생각한 듯하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이르기 전, 아직 왕자인 싯다르타의 신분으로 스물아홉의 나이에 처음 출궁 했을 때. 처음 인간의 삶을 목격했다. 그는 인간의 늙음을 알지 못했다. 병환을 알지 못했고 죽음 또한 알지 못했다. 스물여섯, 성인이 생로병사를 깨달은 나이에서 삼 년이 적다. 내가 알지 못한 것들은 무엇인가. 아직도 순진하게 내가 선 대지의 평탄함을 믿고 있던 것인가. 누군가 몰래 흔들어놓은 탄산음료 병을 연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가능성을 믿는 난 병도 음료도 그대로라고 생각하려 했다. 단지 병 속이 아닌 내 옷에 스며들었다고.

작업장의 다리 높이가 맞지 않아 흔들리는 책상다리 밑에 종이를 꾹 눌러 접어 쑤셔 넣었다. 세련된 해결방안이 아닐지라도 책상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편안해진 사용감으로 인해 흔들림과 접은 종이 조각은 지워진다 자연스럽게. 역할은 서리처럼 냉정하고 비수처럼 날카롭다. 고맙게도 때론 익은 사과처럼 땅을 향해서 떨어졌다. 천재가 증명하기 이전의 사람들도 사과가 공중에 떠 있다면 의아히 여겨졌을 것이다. 당연함은 잊음을 전제로 하는 말인 것을.

군자의 복수는 10년 후에도 늦지 않다. 나는 행복했던 것이다. 행복해서 평생의 삶을 견인하던 복수심도 잊었고 나는 그 망각에서 감사함을 찾아냈다. 불편을 잊고 복수만큼 갈망한 행복을. 충분히 먹을 수 있지만 쉽게 물러버려 식감도 구리고 보기에도 좋지 않아 나는 항상 버리던 양파의 첫 꺼풀. 희고 매끈하던 식재료도 한 때 이어진 생명에 의해 항상성의 한계를 내비쳤다. 잠깐 놓친 견인줄을 다시 건네받으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찌 일생을 바친 동작을 잊으리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았다.

내가 깨어버리고자 했던 것을 깨기에 힘이 턱없이 모자라는구나. 발치에서 멀어지길 바란 것이 아니라 다시는 상념조차 갖지 못하도록 부수고 짓밟는 일.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한 두 살, 일 이년 차이는 같잖게 된 날이 오니, 내가 거짓이라고 여겼던 사실은 길가에 나뒹구는 쓰레기보다 못한 가치. 뭇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처럼. 인간으로 태어났음에 감사했다. 결코 굴레를 깰 수 없으니 나는 떠나리. 연료가 비로소 가득 찰 날 너희와 함께 속했던 중력을 벗어나는 나를 너흰 아랫 물길 끝 시궁창에서 목격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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