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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Feb 10. 2022

내가 가진 만큼 너희들은 잃어버리게 될 거다

2021년 5월 5일부터 5월 7일까지

#5월 5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로미오도 그랬을까? 엔트로피에 의해서 내가 무언가를 가지려 하면 어떤 곳의 누군가는 무엇을 잃게 되니까 말이다.


성대하게 지어진, 혹은 허름하게 차려진. 삶의 기점은 파괴당하기 일쑤다. 대단한 일은 항상 이명과 대척점을 몰고 다닌다. 부쩍 택시를 자주 타게 되었다. 기사님이 잡담을 걸어오는 것을 제외하면 목적지까지는 통행에 대한 잡념이 없다. 교통카드를 태그 하는 소리도, 하차 벨도 안내 멘트 방송도 정류장도 없다.


공고히 하게 된다. 의견과 상념은 이제 나, 그 자체이다. 이전에는 안내를 했다. '올라타시겠어요? 내리시겠어요? 이번 견해는 이러이러하며 대체적으로 이 쪽으로 위치해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파괴된 기점에 의해서 나를 해설하는 일의 부서는 나와는 아주 긴밀했으나 하이테이블의 논의에 의해서 정리 해고되었다. 남은 직원은 현실을 산다.


어떤 기점부터 훈련 중량이 오르지 않았다. 아마 발휘할 수 있는 퍼포먼스의 총량은 채워진 모양이다. 잘하지 않던 부위를 훈련하기 시작했다. 신체의 협응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결국 뇌의 지배 하에 보편적이고 동일한 성장을 한다.


기점에서 만난 좋은 이들은 때마다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인복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병에 들었을 때 부축해주었고 사랑의 날카로움에 몰지각했을 때 영양가 있는 이야기와 백숙을 대접해준 이가 누구였던가.


좋은 음악들은 고양감을 주었다. 자의든 타의든, 선뜻이던 억지던 그런 음악과 건너는 한강 다리는 당시엔 쉽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굉장한 힘이 되는 일이었나 보다.


5월 7일

엉거주춤한 자세로 짧은 휴가가 끝났다. 어찌 됐건 휴가는 휴가다. 내용물이 뭐가 들었던 오븐에도 사용 가능하다던 내열 용기는 열을 견뎌냈다.


같은 이유로 다시 약을 먹는 일이 달가운 것은 아니다. 글에 종종 적어두었던 나의 고질적인 문제들은 병명이 붙었건 붙지 않았건 남의 눈에는 지엽적인 일들일뿐이다.


지적설계론을 반박하는 이들의 말에 따르면, 식도와 기도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 편이 설계적 결함의 논지에서 먼 것이리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고약한 내 코와 목은 호흡의 문제를 섭식까지 데려와 괴롭게 하니까.


내가 게워내고 싶은 것은 입으로 들어간 음식뿐만이 아니라 자연히 내 몸에서 생기는 눈물 따위의 것도 포함한 듯하다. 눈물을 게워낸다니. 억지로 울겠다는 뜻은 아니다.


현실을 살았다. 현실의 치명적인 약점은 낭만이다. 낭만에 비수를 꽂는 것이 언제나 현실이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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