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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Feb 13. 2022

세안, 세신, 세뇌.

2021년 7월 1일

컨디션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졸피뎀이나 카페인 등의 성분이 나에게 정확히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명확히 알지는 못한다. 그저 커피를 먹은 날에는 잠에 들기가 어려워지고, 혼란을 지우려고 안정제와 수면제를 같이 복용한다는 사실 빼고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도 없다.


자기 전에 약을 삼키려다가 지금의 감상을 써야만 할 것 같아서 자리에 앉았다. 그냥 재밌는 유튜브 영상 하나 보면서 15분을 보내면 알아서 졸음이 올 것인데 굳이? 하는 생각이 나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잠에도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한다. 실제로 잠이 오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날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습관과 같이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사실이 또 괴롭다.


아, 글을 적어내려 보니 내가 글을 쓰려고 했던 이유가 기억이 났다. 항정신성 약물이 일으키는 기억상실에 관하여다. 내가 기억이 날아가거나 상실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도 또한 아니다. 왜냐하면 최근의 일들이 창에 방충망을 댄 바깥 풍경 마냥 조금씩 집중해야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것 또한 아니다. 7월이 되었고 이제야 나는 신발끈을 묶었다. 늦었다거나 늦장을 부렸다는 것은 너희의 견해이고 내가 생각했던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나의 일에 적절한 망각이 도리어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긍정적 의심을 하게 됐으니 말이다.


나쁜 감정들을 지워준다면 기꺼이 얼마던 행할 가치가 있다. 나에게 나쁜 일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일' 이니까. 해결하면 될 일.


어머니는 모든 약물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이다. 아프시기 이전에도 그랬고 아픈 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저 연명이나 치료를 위한 것에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듯하다. 나는 어머니의 사랑 그 자체이고 그 사랑에게 만들어진 감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 같아도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어머니에게 장난 삼아 내 간이 걱정되어서 들이붓듯 물을 마시게 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하는 농담이었지만 스스로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 간도 그런 말이 농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노릇이다.


알러지 비염약과 항불안제를 같이 먹으면 어지럽다고 했더니 의사는 텀을 두고 먹으라고 했다. 어지러움을 경험하는 일이 나에게는 말랐을 시절 기립성 저혈압에 의해서 어지럽거나, 복압 때문에 머리에 산소가 가지 않아 운동을 하다 비틀대는 것 이외에는 딱히 없었기에.


정신을 놓고, 잃는다는 건 나에게 어찌 보면 필요한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정신과 생각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이 나의 성품이었고 그렇기에 술이나 기타 유흥들에도 흥미가 없었다.


의사의 말에 괜스레 두려움을 느낀 이유는, 아 이것은 내 몸에 부담을 주고 있는 행위이구나. 어지러움이라는 것은 결핍의 현상이니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은 약을 먹은 후, 그리고 일어난 직후의 일들이다. 약의 도움을 받는 사람은 7 - 8시간 이상 자야만 한다. 주의사항에도 분명히 쓰여있다. 나는 근 며칠 필요 이상으로 많이 잤다.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이렇게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적은 처음이다.


목적의식이 떨어졌기 때문에? 혹은 의무적으로 출근할 이유가 이번 주에는 없었기 때문에? 새벽 해를 보고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모두 이유는 아니었지만 이유가 뭐였던 간에 나는 두려웠다.


기억이 나지 않는 새벽의 카톡이, 자기 전까지 붙들고 있던 의미 없는 유튜브의 내용이,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나의 기분이 어떤지.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일어나서는 입맛도 없고 아침 약도 신경 쓰지 않게 된 나의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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