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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Feb 14. 2022

빠를수록 좋은 것들. 배민 말고

2021년 7월 7일

#0

오랜만에 메모장에 글을 써보는 것 같다.


글을 쓸 수 있는 매개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데 나의 글 실력은 그와 반비례하며 추락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중학교 시절의 불만을 가득 담은 두툼한 가죽 커버의 노트는 이사를 오면서 사라졌다.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기록이지만 불타는 분노를 담고 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잊어버렸을 때 그 뜨거움을 다시 목격할 일이 없다는 사실에 오히려 빠르게 단념할 수 있었다. 아마 직접 버렸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요새는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서 도통 뭐가 진짜인지 알 수가 없다.


이후의 글들은 익히 알고 있는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그곳은 내가 직접 지우기 전까지는 사라질 리 없고 아주 작은 용량의 데이터로 저장되어 있는다. 전화기를 여러 번 바꾸었으나 과도기의 메모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미숙한 필력과 단어로 적은 진심은 부끄러움이 부른 민망함을 건네주기는 했지만 지금의 나는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손글씨를 타의로서 2년간 쓴 후에는 처음 내 컴퓨터를 가져볼 수 있었다. 클라우드로 묶인 나의 글은 내가 가진 전자기기 어디서나 존재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나는 다시 펜을 들어 글을 쓴다. 잉크가 나오는 펜으로, 액정 위를 누비는 펜으로도. 결국 내가 수기로 쓰는 것만이 더 가치 있는 것일까? 지금 타이핑하는 이 메모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이전 세대의 글쓰기 방식이 된 것일까?


숨통을 조여 오는 꿈들은 기상 후에는 에너지를 모조리 빼앗는다. 마음에 내키는 것만 하기로 마음먹고 맞이한 해가 반절이 지나갔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오히려 삶의 방향성을 반대로 틀어버리고 만다는 글은 사실로 받아들여져서 염두라는 선반에 올려지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손에 꼭 쥐어 있는 말 중의 하나였다.


내가 건너가려 했던 길은 한적한 시골의 오솔길이 아니었다. 언제든지 죽음이나 치명적인 부상이 기다리고 있는 고속도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그렇게 변했다. 아, 저곳에 나가면 언제든 목을 내놓을 준비를 할 수밖에. 차라리 일격에 참수당하는 것이 나을까? 어쭙잖은 속도의 시련에 부딪혀서 반 불구가 되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낫다.


#1 이틀 전의 꿈

끔찍한 모습으로 내 앞에서 죽어버렸다. 그 모습은 내가 익히 미디어에서 보던 모습과 비슷했다. 이마 언저리와 눈두덩이가 부풀더니 그대로 머리가 터져버렸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웃어준 죽은 이의 얼굴은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비쳤다. 내가 다니는 병원 의사 선생님. 성격은 별로였지만 성심껏 가르치려 노력했던 학생. 전혀 가깝지 않은 학교 사람. 인상만 비슷했다.


슬픔은 너무나 깊었다. 내가 상황을 겪은 곳은 어떤 학교 같은 건물이었는데 상황을 겪은 후에 나는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나의 슬픔에 대해서 설파했다. 냉담한 얼굴들이 반겼고 나는 계속 냉소의 건축물 안을 떠다녔다.


내가 이 꿈에 대한 기억을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 명확히 명시할 수 있는 이유는 꿈속에서도 생생히 느껴졌던 형연할 수 없는 깊은 슬픔 때문이었는데 당시 나의 수면 장소와 수면 상황은 결코 그럴 이유가 없는 곳과 사람과 함께였다. 애석하게도 그 사람은 언제나 나에게 안정을 주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의 곁에서 너무나 곤히, 편하게 잠들던 시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2 나에게만 어려운 것

신발 추첨에 응모를 여러 번 해봤지만 나는 한 번도 당첨되지 않았다. 이제는 추첨을 통해 사야 하는 신발이 그다지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마음속에서 여러 번, 내가 실제로도 인용한 적 있는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것들은 대부분 우리를 상처 나게 한다는 말. 기대감을 져버리는 일도 상처를 주는 일이라면. 2에서 1을 빼면 1. 0에서 1을 빼면,


꿈에서 나의 옆사람은 손쉽게 신발 주문을 마쳤다. 웹 사이트는 읽을 수 없는 언어로 되어 있었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나는 주문서 작성도 못한 채로 이벤트를 마쳤다.


반응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첨, 추첨 등의 단어는 누구에게나 기대를 품게 하는 말이니까. 기대감을 져버리는 일도 상처를 주는 일이다. 2에서 1을 빼면 1. 0에서 1을 빼면 -1


#3 시선

아무리 흙을 돌려도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물레 위에 돌고 있는 이 물체는 내가 아는 흙이 아닌가? 할 정도로. 나는 따가운 시선의 중심에 있었다. 전혀 중심이 잡히지 않지만 나는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살이 쓰렸다. 그 사람들의 눈빛이 너무 불친절해서.


부딪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딱 예상했던 만큼이지만 멍이 들고 살갗이 찢어지는 것은 당장이다. 스트레스도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 주체이다. 이상을 이야기하는 나의 입과 생각은 현실을 사는 나의 물리적 육체와 정신과는 거리가 있었다.


언제나 이런 식이 아니었던가. 내가 나의 상식과 주어진 토양, 즉 게임에서의 시작 아이템을 가지고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효율을 낸 후 그것들을 과감히 버려야 할 순간에 망설이면 안 된다는 것. 극복은 뛰어오르는 그 순간에서 절정. 달릴 구상을 하는 순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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