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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Feb 15. 2022

우리 되도록이면 만나지 말고 잘 지내요

2021년 7월 13일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들을 하나 둘 소거하다가 보면 편안함이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불순물을 제거하다 보면 결국에는 순수한 무엇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었다. 익숙한 흰 쌀을 만드는 과정도 그랬으며 백자토를 만드는 일도 다를 것이 없었다.


자주 일어나는 신체적, 물리적 불편감을 제하고 나면 지속적인 심리적, 정신적 불편감은 제거해야 하는 숙제로 주어진다. 시간은 멈추는 법 없이 흘러간다. 하릴없이 보낸 시간일지라도 무슨 방법을 써서든 나라는 수하물에 넣어 부친다. 어디에 내려질지 모르는 짐들.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을 누가 받아 열어볼지 모르게 되는 일은 두려우나 잊힘으로 극복된다. 다시 캐리어 속 짐들이 빛을 보게 되는 날에 내가 표출할 당혹감은 염두에 있지도 않다.


꿉꿉한 날씨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낮인지 밤인지 헷갈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보통의 생활은 아니었으나 나쁘다는 감정보다 좋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느낌이라는 복잡한 처리과정 안에 감정이 있는 것이지만 그 배율에 대해 정하는 건 외부적 요인에 기인한다. 즉 날씨도 주야도 나쁜 감정과 뭉뚱그려져 저 쪽으로 치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오늘은 누군가의 생일이다. 작년에 내가 쑥떡을 선물했던 그 누군가는 나에게 허울 없는 위로를 건넨 사람. 가끔은 대면 없이도 쉽게 선물을 보낼 수 있는 이 세련된 시대가 고맙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성적인 세대에게 감성은 거추장스러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안정감. 그 옛날 펜팔이 이런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생각하면 기억도 안나는 대화들을 주고받은 상대가 얼마나 많은가. 정보는 쏟아지고 나는 감정적 기억만 남겨두는 입장에 놓였다.


1년 만에 돌아온 친구의 생일에 나는 또다시 대면 없는 인사와 선물을 보냈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수업을 듣고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엮였던 주제 없는 타인보다는 만난 적 없더라도 진정 감정을 나눈 물리적으로는 생경할 친구가 더 편한 것을 보면 펜이나 종이의 낭만보다는 나도 터치 스크린과 미디어에 매몰된 현대인이 아닌가. 하긴, 내 뇌나 다름없는 이 휴대기기는 모양만 다르지 10년 가까이 이전 세대의 어른들이 직접 했던 일을 전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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