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헌 Feb 16. 2022

제목도 아까운 어느 날의 구린 글

2021년 7월 28일

이건 나는 게 아니라, 멋지게 추락하는 거야.


인간은 날 수 있게 되었다. 새를 동경하는 사람들의 염원은 이루어졌다. 불과 얼마 전에는 민간인이 우주로 인정되는 범위까지의 비행을 했다.


친구는 날개가 있으니 날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맞다. 모든 것은 용도가 있고 쓰임새는 쓸모와는 다른 말이다. 예쁜 쓰레기라는 시쳇말은 쓰임새를 따지는 것이지 쓸모와는 거리가 멀다.

쓰임새는 오로지 나의 욕망의 충족 아닌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나면 만족감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만족감 다음에 다짜고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나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허탈함이었다.


내가 홀로 따져본 공허함과 허탈함의 단어 자체의 맛은 마치 배고픔과 허기처럼 비슷하나 느낌이 달랐다. 공복은 기력이 없다.로 해석될 법도 하지만 나에게 공복이란 때때로는 유지하고 싶은 상태이기도 하다.

허탈함은 완전히 피부로 와닿게 설명하면 허기져서 시켜본 배달음식을 몇 입 먹지도 못했을 때의 그런 걸까. 돈은 돈대로 날리고 음식은 음식대로 남았고. 맛없는, 흥미 없는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는 것이 심리적으로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


복수를 멈추면 할 일이 없어진다. 젊은 날의 나, 어린 날의 나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의 용광로가 열원을 잃고 동시에 끓기를 서서히 멈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평화인가? 더 이상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연료를 가져다 넣을 필요가 없으니까 이건 기우인가? 부정적이나 강력한 그 원동력으로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이미 금속이 녹았으니 준비한 주물을 만들면 된다. 아직 멀었다. 아직 부족하다 여기며 갈고닦은 것들을 모두 멈춘 지금의 상황이 기우인가?


언제나 멋진 사람이기를 꿈꿨다. 흠 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압도적인 무언가로 주변을 찍어 누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삶은 나에게 가시적인 범위 내에서 항상 강한 열망을 주었다. 남을 비웃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크나큰 만족을 느꼈다. 조소가 아닌 레벨이 다른 어떤 것에서 오는 진짜 우위가 나를 살게 했다.

그래서 성취가 사라진 나날들은 굉장히 힘든 날이었다. 동경하던 일은 부담이 되었고 그들이 올라가 있던 단상에 내가 올라가 보니 그 자리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 장난감 코너에 파는 장난감 왕관을 나에게 주기로 했다. 예쁜 쓰레기라도 내가 대강 이런 성취는 이뤘구나 하는 방점은 찍어야겠지 싶어서.

작가의 이전글 우리 되도록이면 만나지 말고 잘 지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