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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Feb 17. 2022

어차피 집도 없는데 마음 속을 재개발하기로 결정

2021년 8월 1일

#1

안부를 묻는 글,


안녕 너는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작년에는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는데 소속이 없어진 올해는 좀 한산하게 보내고 있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지내온 시간들이 길다는 것을 알아. 너는 항상 말했잖아. 더 높이 높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간 후에 떨어져 죽을 것이라고. 너에게 죽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고 올라가고 싶은 마음만이 남았으면 좋겠다.


네가 아득바득 올라선 어느 정도의 높이. 누군가에겐 목표이자 누군가에게는 이정표. 또 누군가에겐 아주 먼 뒤안길일지도 모르는 거기 풍경은 어때? 만족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해. 넌 그런 사람이니까.


네 소식이 궁금하다.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널 찾기 어려워졌잖아. 무슨 바람이 든지는 몰라도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나처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이미 너라면 눈치채고 있겠지만.


강직한 너의 태도가 어떠한 외력에 의해서 굽혀지지 않고,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방향성을 쭉 유지했으면 해. 인간적인 결점이 너라는 존재의 절대적 결점이 아니라는 거 꼭 명심했으면 좋겠어.


#2

겸손은 오로지 시간만이 알려준다. 나의 시간과 얽힌 타인의 시간이 나에게 겸손을 배우게 했다.


쉽게 이루어진 것만 같은 모양새가 띈 색채는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 어떠한 일에 대해 유려하고 간단한 행위로써 완성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선보인다면 시간의 뒤편에서는 많은 고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도도새의 멸종 이유는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죽였기 때문이다. 행위의 높은 빈도는 공급의 차질을 가져온다. 글을 많이 적고 나면 할 말이 없어지고, 운동을 심하게 하고 나면 걷기가 괴로워진다. 마음을 많이 쓰고 나면 제 아무리 호수 같은 마음일지라도 바닥을 드러낼 것이리라.  


나는 20대가 되어 혼란스럽고 요란한 20대의 초반이 지나면 어떠한 진리가 내 마음속 한가운데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진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삶의 지도가 기획 도시처럼 일정하고 정돈되어있는 마음속을 만들 줄로만 알았다.

광활하다 여기며 멋대로 쓰던 마음 위에는 여기저기 필요에 의한 부처와 기관들이 생겨났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매일 문제는 생겼고 해결하기 위한 부서가 마음에도 필요했다.


요새 즐겨보는 드라마에 나오는 월드타워 보다 높은 세계관 속 랜드마크는 고층 건물이 즐비한 서울에서조차 생뚱맞고 낯설다. 단지 조금은 어설프고 조악한 CG 때문인 것일까? 그 탓도 있겠지만 그저 어울리지 않을 뿐. 자연생성으로 이루어진 도시에서 통일성을 기대하다니.

 

사람들이 떠나는 이유는 단순히 마음이 떠났기 때문이다. 소통의 높은 빈도는 때때로 관계 유지에 문제들을 가져온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진심을 전하지 않고 너희의 진심 또한 궁금하지 않다. 복기해봤다. 모두들 저 커튼 뒤에서 걸어 나오기 전에 많은 생각을 쌓고 오는 걸까 싶어서.


어쩌면 내가 바란 진리는 마음속 세상의 원주민들이 보기엔 생뚱맞고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그 의견을 은연중에 전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무의식 중에 받아들였기에 그 많은 마음의 기점들을 세우고 있었겠지.


자리가 많아 보였던 공간은 이제 빽빽이 들어차 있다. 유명무실한 기관들은 문을 닫았다. 내가 직접 셔터를 내려 닫기를 바랐던 곳들도 수두룩 했다. 잘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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