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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Feb 12. 2022

고통은 할부가 없다. 매번 일시불. 그게 결제방식이다.

2021년 5월 27일

꾸준히 쓰는 일에 이제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  됐듯이. 보편적이라 의심하지 않는 . 그것이 나의 숙제


내 세상에서 가장 좋다고 여긴 것이 세상. 모든 세상에서도 최고일까.


내가 올해의 생일을 기대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내가 내다 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이 불타서 재가 되어있을지 궁금함에 호기심에 참을 수 없다. 제발 전소되어서 사라졌길 바라는 것이 있는 반면 꿋꿋이 남아있어, 혹시나 나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줄 만한 그런 것들이 기다리지는 않을까 하고.


버린 이들은 제대로 버려졌길 바라고, 나를 버린 이들이 내가 뒤집은 세상에서 중력을 잃고 떨어져 머리가 박살나버리길 바라는 마음도 한편으로는. 없다고 하면 거짓부렁.


어릴 적 생일이라는 날은 굉장히 이상하고 특별한 날이었다.


아직 유년이었던 어느 날. 책임감과 무책임함이 공존하는 아이 었다. 판촉 전단지에서 잘라낸 장난감 사진을 두꺼운 책 속에 꽂아두고 갖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그 특별한 날이 생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받아쓰기 백점을 받으면 받던 만원 권들은 두꺼운 책 속 어딘가의 무엇을 위해 모였다.


당시에는 구 도심에 위치한 할머니의 식당 근처 집들의 재개발이 한창이었고 그 때문에 식당, 주점뿐만 아니라 공사 현장에 밥을 배달해주는 함바 영업도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곳에 서린 그림자는 어머니가 종로를 떠나기로 마음먹게 만들었다. 그리고 2002년 겨울의 어느 날. 겨울이면 항상 보이던 골목 끝 거꾸로 자란 고드름을 마지막으로 효자동은 더 이상 집이 아니게 되었다.


살로만 치킨. 그때 어른들은 순살 치킨을 그런 친근하고 직관적인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접시 가득 쌓인 살로만 치킨과 다채로운 잔치 음식으로 차려진 생일 상이 기억난다. 집이 북적북적했다. 유치원의 친한 친구들부터 그들의 어머니까지. 파티라는 이름보다는 잔치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하루였다.


그 이후의 생일은 거의 대부분 가족들과 보냈다. 여동생들과의 형평성을 위해 어머니는 옮긴 거처에서 비슷하게나마 종종 풍족한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긴 시간 동안 생일을 배웠다. 일 년에 단, 한 번. 나를 위한 날이라고 특정한 누군가가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세상은 나에게 그렇다는 식으로 학습시켰다.


으레 그렇듯 모든 일에는 유행이 있더라.


가장 최근에 배운 가르침은 생일 때 반짝이는 알파벳 풍선을 불어 호텔 방 벽면에 붙여놓는 일이 축하의 유행이라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애정 어린 문구가 올려진 맛대가리 없는 수제 레터링 케이크 등이 요즘의 축하의 방식이라는 모양이다. 20대에도 살로만 치킨을 쌓아놓고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기꺼이 받아 든 흐름이지만 한편으론,


행복도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해야 된다. 왜 사랑도 식사도, 심지어 신용카드도 적당히 쓰라면서 행복에는 그런 제한사항을 누구도 주지 않는다. 모든, 너무 좋은 것에는 항상 거짓이 섞여있기 마련인데. 내가 생일에 불행을 자처하는 이유는 내가 누려도 될 행복의 총량을 혹여나 넘길까 하는 염려 탓이었다. 구덩이를 더 깊게 파놓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오늘날, 오늘날.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의 날에 오기를 바란다. 깊은 구덩이가 아니라 개수를 더 파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나, 둘. 셋넷다섯. 여섯? 불행의 크기로 행복을 가늠해보는 일은 유쾌하지는 않으나 오차범위가 적다. 반짝이 풍선과 살로만 치킨은 놓이는 장소도 행하는 사람도 굉장히 다르니까. 괴리가 크다.


여럿과 함께 불살라버린 저 바깥의 삶. 무너뜨리고 해집어놓은 구덩이가 얼마나 많이 채워졌을지 궁금하다. 종종 왜 저 안쪽으로 자신을 데려가지 않았느냐 묻는 이들이 있다. 영영 행복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니까 그렇다고 했다. 너희는 넘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비집고 올라와 들어오기 전에 저 타오르는 파도 안에 두고.


이상하고 특별한 날. 올해는 뒷쪽의 설명에 책임감을 올리겠다. 특별하다는 말에는 좋고 싫고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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