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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Apr 18. 2022

총기(K2 아님)는 사라지고 반짝임은 바랜 어느 날에.

허공으로의 말은 헛손질, 2022년 4월 18일

때때로 공든 탑도 무너진다, 혹시 모든 탑은 무너짐을 전제로 하나?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겠어?'


중력 위에서 지켜보던 이가 사다리를 놓고 이제 돌을 올릴 자리가 거의 없는 돌탑 꼭대기로 올라간 나에게 물었다.


'흠, 이제는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아쉽게 됐네.'


처음부터 돌탑을 쌓으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 뜻도 달랐다. 나는 그냥 보금자리 근처에 있는 돌들을 한 곳으로 모으고자 했다. 납작하고 둥글고 모나고 생김새나 크기에 상관없이 한 곳으로 모여 돌무덤이 됐던 수다스러운 돌멩이들의 동아리가 됐던 발에 차이지 않고 모여있기를.


'모으다 보니까 높낮이가 생겨서 꼭 언덕 같기도 하네.'


사실 좁고 곧은 모양을 탑이라고 부른다면 마땅히 탑이라고 불릴 모양새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돌탑을 만들었다. 때로는 시간을 죽이는 놀이의 일환으로, 혹 풍랑이 부는 날에는 마음속에 있는 돌로 쌓기도 했다.


바람에, 비와 눈에 어떤 계절의 돌들은 다시 돌무더기로 돌아갔다. 언젠간 내가 주워 다시 탑의 언저리에 올려두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가능성의 언덕으로.


언덕의 중심부에 있는 돌멩이는 꼭대기를 무참히 무너뜨린 자연의 쓰라림을 느끼고 있을까? 스테이크를 구울 때는 심부온도 조절이 고기의 맛을 좌우하던데. 언제든 널브러질 수 있는 돌탑 표면의 돌들보다는 윤택하게 탑을 지탱하고 있겠지?


'처음 놓았던 돌의 위치를 기억해?'


돌탑이 오른쪽부터 쌓아진 것인지 왼쪽부터? 혹은 중앙부터 퍼져 결국 아찔한 언덕의 모양을 이루게 된 것인지 어차피 시선은 흘러 저 첨단으로 향할 테니.


어리둥절한 상태에 빠졌다. 각기 다른 돌들이 모여도 결국 비슷한 형태의 탑이 되는구나. 그 과정에는 내가 골라 올려놓은 흔들리지 않는 탑을 만들겠다는 고의가 발려있기 때문인가.


때때로 대단한 마음속 결심에 대한 마침표로 돌을 올렸다. 그럴 때는 평소보다 열심히, 그리고 유심히 돌을 골랐다. 내가 지금 놓으려는 자리에 딱 맞으면서도 당시의 내가 먹은 마음에 방점을 찍어줄 수 있는 고운 모양새라면 좋았다. 언제나  마음에 쏙 드는 그런 돌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고심의 돌을 올려두고 나면 두고두고 기억되었다.


훌륭한 건축가가 아니니 대부분 높이가 비슷하다. 좋고 싫음은 정말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인지, 색깔도 실루엣도 다 비슷한 모습인데 그중 나는 어떤 돌탑을 아낀다. 자주 자세히 살피니 어디 돌이 빠졌는지도 가끔 보였다.


'네가 쌓은 거야 이거? 그 전이랑 모양이 다른 거 같은데'


'그때 같이 만든 건데 아마 며칠 전에 비 와서 돌이 몇 개 빠졌나 봐.'


탑을 쌓는 것이 취미도 아닌 그저 길이 있으니 걷는 수준의 행위에 이르렀을 때쯤 산행을 하는 도중에도 돌을 주워 바위 위에 서너 개씩 올려두었다.


'겨울의 눈사람은 녹아 없어지지만 쟤네는 서로 굴러 떨어져도 각자 살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아까 돌을 놓아두었던 바위 쪽을 바라봤으나 거긴 돌이 있었다는 흔적도 없었다. 흩어져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지만 나는 부디 누군가가 걷어찬 것만은 아니길 바랐다. 그냥 자연적으로 굴러갔으면 좋을 텐데!


재밌기도 하다. 돌 산 위의 바위 위의 돌무더기 위의 돌탑.


내가 살펴보지도 않고 모았던 것들. 모양만 돌멩이 같다면 경도가 어떻던 조도가 어떻던 일단 저 모임으로 끼워 맞춰 놓았던 것들. 몰래 돌탑에 숨어들어 때론 와르르, 때론 툭. 데구르르르.




그들은 우점종이 되리. 평등을 기조로 삼는 현대를 비웃듯이 우점의 기준을 세우리. 한 때 나도 저 첨단을 바라보았으나 남모르게 고른 곱고 아름다운 돌은 우리가 아는 곳에 고이 놓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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