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초, 바라던 성취가 있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오히려 무딘 날의 도구를 사용하다가 다치는 일이 더 많았다. 잘 들지 않는 애매한 예리도가 훨씬 위험하다니, 도리어 바짝 선 날은 킥킥대며 내가 목표로 한 부분을 적확히 잘라내어 주었다.
칼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길거리에 버려진 고철과 다를 게 없지 않나. 어중 띈 각오로 계속해나가는 스스로가 내게 들린 무엇보다 무디고 해로운 칼이 아닌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니 정신은 여전히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으나 대략 한 달 주기로 오는 브런치의 새 글을 써보라 종용하는 알람에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 날이 언제인지를 확인하려 들어갔을 때 그 날짜를 목격하고 나니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1년을 2개로 나누고 누군가는 4개로 나누기도 하는데 4개로 나눈 사람 입장에서는 벌써 그래프 1칸이 칠해졌을 테니까.
1월 말에는 글이 없다. 왜냐면 1월 26일은 내가 체한 날이기에 그렇다. 4시 정각에 온 문자를 받아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앞에 놓인 먹음직스러운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질 않았고 나는 계속해서 배앓이를 해야 했다. 하지만 기뻤다. 성취의 기쁨은 무엇과도 비할 데 없으리. 그러나 백번 양보하고 나 자신의 크리크를 수정해 타인이 주목하지 않는 곳에 시선을 두고. 그 부분은 나를 꼭 만족시켜 주리라며 손아귀에 잡은 것이 훔쳐간 내 시선을 아무리 아껴서 누린대도 그 즐거움이 오래가지 않았다. 나에게 성취는 복수와 닮아 있기에 항상 쥔 뒤의 허탈함에 대비해야 했다.
갈망이 점점 가시권에 들어와 손 뻗으면 닿을 곳까지 오면 마냥 환희에 찰 것 같지만 오히려 두려움도 함께 그 그릇을 채운다. 환희 스트레이트는 없다. 두려움이며 온갖 걱정이 섞인 칵테일이 나온다. 혼란 온 더 락. 그나마 들어갔을 달성의 단 맛을 음미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일단 들이켠다. 그리고 생각한다. 공허함을 채우기엔 불만족이 딱이야. 불만족은 좋은 추격자로 늘 잘 따라다닌다. 그림자와 비해도 손색없는 트래킹 능력이다.
패턴이 꼬인 것도 아닌데 잠을 한숨도 못 자는 새벽이 오면 나는 피로도와는 무관하게 닫히지 않는 눈두덩이를 지그시 눌러본다. 나에게 있어서 피로란 정신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 중에 어떤 반절에 더 무게를 두고 있을까.
20대를 비워내며 작금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낙관을 탈탈 털어도 남은 시간을 마냥 관망할 수 없는 내가 되니 본래도 쫓기던 마음이 더 두둥실 떠올라 허공으로 발을 구르고 말았다. 만족스러운 소비도 아닌데 늘상 부족한 나의 재화. 불만족들이 내가 빠져나가지 못할 좁은 간격으로 나를 빙 둘러 선다. 이곳은 이제 감옥이나 다름없다. 나는 자유인이지만 내가 불러낸 창살들은 서로 담합을 지시하고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내가 늘 말했던 죄악의 일부가 내가 그곳을 빠져나갈 의지를 꺾는다.
4월이 되면 이 마음이 지면을 박차고 전진에 힘을 실어줄까?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해가 어슬렁 모습을 드러낼 새벽에 전날 저녁에 잔뜩 먹은 마늘의 냄새가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것을 누르며 새벽 간 내가 읽은 새로운 정보들을 쌓아본다. 쿠팡 물류센터는 생각보다 돈을 많이 주지는 않는다는 것과 내가 이전에 알바를 알아봤던 것은 무려 2년이 훌쩍 넘었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그 2년을 채웠던 것들은 없다는 사실이 남았다.
내가 이 컵에 채운 칵테일의 재료들. 재료들은 라벨을 잃고 공장도 잃은 채로 혀 끝에 가물가물한 맛을 남기고 사라진다.
이제 울며 걸어 나오던 금곡동의 냇가도 언제나 손과 발이 시렸던 우사단로의 오르막길도 없다. 관악산의 기운이 나를 정말로 북돋아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줄 거라는 막연한 환상도 이제는 없다.
혹시나 유실되는 추억이 있을까 두려워 꼼꼼히 저장해 뒀던 사진들을 지우며 생각했다. 결국 복수에 쓰이거나 혹은 지워지거나. 앙갚음에 쓰이지 않을 것은 지워도 무방했던 것이다. 때때로 누군가 지불한 그대로 환불해 주려는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 몰라 내부로 향했던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이 금액을 받아갈 이가 특정되어 즐겁다.
반짝이는 것들로 트리를 꾸미고 나면 그것은 25일 전까지 가장 아름답다. 새벽은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고 별은 죽을 때 가장 밝은 빛을 낸다. 내 삶의 장르는 피카레스크, 주연이고 조연이고 다 악인이라 다행이다.
1월의 말, 결자해지
1월 14일
역체감은 그 어떤 감각보다 나를 탄식하게 만들었다. 인간을 긴 시간 동안 살아남게 만든 적응력은 외려 적응해 온 익숙함을 벗어나자 절망을 경험케 했다.
작은 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이 나를 괴롭게 했지만 나는 그 에피소드들 위에 위치한 외부자가 되길 간절히 바라며 나를 만들어왔다. 이런 역체감들이 하등 쓸모없는 신념들로 인해서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빨리 외력을 받아서라도 빠져나가고 싶었다.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나 미래보다 부정적인 영향과 결과들이 나를 달리게 하는 효율 후진 연료가 되었다.
1월 18일
사회적 계약이 사람을 살게 한다. 10년 전으로 돌아가도, 그 말을 더 이해할 수 없을 15년 전으로 돌아가도 나는 나에게 그 말을 해줄 것이다. 사회적 계약이 사람을 살게 한다.
내가 필요한 것이 있어 전화를 하고 문의를 했을 때 으레 답변을 받을 수 있는 시간대가 바로 사람들을 가둔 케이지이자 그들의 자율을 보장하는 샌드박스란 사실을 호르몬의 결핍은 쉬이 잊게 한다.
왜 집단과 조직이 생기는지, 왜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큰지. 그래도 거대하고 방향성을 지닌 채로 움직이는 것이 가진 에너지를 동경하기에 나는 맞지 않는 아침형 인간 생활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1월 27일
나는 성취에 중독된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통장에 늘어갈 숫자열과 손에 익힐 많은 감각들에. 그리고 내가 입으로 뱉을 돌이킬 수 없는 말의 손익들이 모여 힙산 후엔 부디 오른쪽 윗 모서리를 가리키길.
갈망했던 책거리가 이루어지고 나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성취의 기쁨과 그간의 나에게 보내는 위로. 한 겨울에 꺼내보는 두 번의 여름. 무덥고 무더워 스물 하나부터 쓰던 텀블러의 두 배가 되는 크기의 물병을 샀다.
이게 뭐라고 그리 눈을 따갑게 하나 싶다가도 곱씹어보면 쓴맛이 났다. 그 쓴맛이 너무 아려 그저 삼켜버릴 뿐. 그런 꿀꺽이 늘어가는 과정을 어른이라고 하나.
너무 과한 슬픔도, 벅차게 무지막지한 기쁨도 모두 눈꼴시리다. 소리 내어 웃지 말고 누구도 모르게 눈물 흘리며 그들의 눈꼴을 지켜주고 거울 속의 나의 모습도 단단하게 지켰다.
1월 29일
그녀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족적이 남았으나 그 발자국에 감사하는 이가 적었다.
나의 초등학교 때의 신발주머니. 나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항상 그걸 흔들면서 다녔다고 한다. 흔들며 다녔던 것보다 신발주머니 밑쪽 박음질이 틑어져 신발이 자주 흘러나오던 기억이 앞선다.
또한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신발주머니를 잃어버렸었다. 매번 들고 다니기 귀찮은 신발주머니. 하지만 없어서는 안 됐다. 내가 잃어버린 신발주머니를 꼭 찾아달라고 외할머니는 담임선생님께 부탁했다.
그녀는 치매가 심해져 종종 딸과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와중에도 정신이 돌아오실 때면 늘 내가 신발주머니 잃어버린 이야기를 했다. 유행이 된 맞벌이에 더 큰 미움을 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엔 내가 태권도 학원을 다녀오면 꼭 끓이는 게 아닌 삶아주신다고 하던 라면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장례는 번거롭고 남은 이들의 기력을 앗아갔으나 그때 뿐이리. 나의 신앙의 그릇은 비었으나 유골함 옆에 놓인 그녀의 고관절에 있던 쇠막대와 둥근 인공관절을 보고 나지막이 기도했다.
당신이 제 주위를 분주히 걸어주셨다는 사실에 감사를 전하며,
2월 8일
너는 꼭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낙원으로 있어줘! 이건 이기적인 부탁일지 모르지만.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의 삶을 밀어주는 파도가 된다. 나는 준비해 둔 보드를 타고 물살을 가른다. 너는 나에게 서핑을 허락할까. 혹은 예상보다 일찍 고꾸라져 너의 안으로 휩쓸려가게 될까.
집은 누구에게도 침범받지 않는 공간이라는 뜻도 가졌다. 나는 너와 내가 가진 기억이 서로 다를지라도 그 기억들이 언제든 돌아갈 수 있을 좋은 시절로 남길 바랐다.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상태로 남아있길. 나도 못 들어가도 괜찮다. 나한테 중요한 건 그저 방해받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집. 가능성 자체이니까.
2월 21일
사랑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의 감정에 장작을 더 넣지도, 그렇다고 무심히 꺼져 식어가고 있는 마음을 방관하지도 않을 사람이라면.
그러나 세상은 그들의 이름에는 사랑을 인쇄한 포장지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것은 우정이나 동경, 혹은 호의나 예의 선에서도 충분히 매듭지어놓을 수 있는 관계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런 연애감정이 없는 사람들을 친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삼다수바라는 아이스크림은 없고 우린 그걸 얼음이라고 부르듯이 우리는 사랑에 기반한 감정적 격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그러나 늘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곁에 있어주는 사람을 친구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럼 나는 평생을 친구와 함께 하고 싶었다는 말이 된다. 성질은 좀 달랐지만 친구라고 불린 사람들은 연인보다는 긴 유통기한을 가진 인간관계가 될 수는 있었다.
야인시대가 방영할 시절 내가 따온 드라마 음악의 음계에 함께 즐거워하던 아이들도. 별것도 아닌 골목 담들을 넘고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았던 어린이들도. 사춘기의 치기에 투닥거리면서 항상 부족함을 호소했던 10대의 그들도. 이제는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곁에 있던 이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각자의 중력에서 살아간다. 개인의 중력을 벗어나 다른 이의 행성에 착륙해 이전에 같은 행성에 살던 시기를 추억이라도 하려면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조차도 중력을 벗어나기 어려워 갈수록 강해지는 중력에 순응한 채 굉장한 노력이 필요한 알던 이보다 적은 노력의 모르는 이들을 양산했다. 오이도의 기억은 몇 년 전이고 이해관계는 다시는 같아질 수 없다. 목과 사지에 묶인 밧줄이 되어버린 관계성은 세게 당기면 묶인 이가 부서져버릴까 당길 수 없었다.
불확실성의 연속, 그것은 어찌 보면 또 다른 재미였다.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 이렇게나 많다니. 일반적인 상황을 긍정 혹은 부정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물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대한 대담과는 다르게 이것은 합리화에 가까웠다. 바로 위기에 봉착한 나를 위한 개인적인 합리화. 합리화의 오마카세. 그것이 나를 만든 것이다.
그래, 위기가 없다면. 위기가 없다면! 위기가 없다면 그것은 삶이 아니다. 매달 내가 벌어낼 돈과 해낼 수 있는 일들을 한편에 쌓아두고 진정으로 그것들을 이번 달, 혹은 이번 분기. 반년. 올해 내로 해결할 수 있는지 스스로와 경쟁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와의 싸움은 이긴 것도 나이고, 진 것도 나이기에.
불확실성의 소거. 그것은 나에게 간단한 주제이다. 금액을 내면 좌석이 마련되고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면 나를 방해하는 것들이 적어지는 바로 그런 소거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앉을자리가 없고 나를 방해하는 사람의 영향력이 나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는 것. 나의 실력을 믿고 당당히 저 원판과 바벨에 몸을 갖다 대는 것, 흙 컨디션이 어떻던 멋진 작업물을 내어 놓는 것. 그것이 나의 인생에서의 소거법이요 정형 모델인 것이다.
자기 연민에 빠져지 내던 어느 날엔 끈적이는 그 감정이 사랑의 잔재인 줄로만 착각했고 능력부족에 시달리던 숱한 날의 일탈은 고통받는 나를 위한 하루의 낭만이라고 자부했다. 나를 림보에서 꺼내준 것은 보통은 미래의 나였고 아직은 타임머신이 개발되지 않아 미래가 오기 전에 나를 먼저 데리러 오지는 않았다. 도달 전에는 미팅도 없었다. 달리던 걷던 기던 도달.
사람과 사람 사이는 그렇게 자로 재고 칼로 잘라 다듬은 것처럼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음에도 늘상 바랐던 것은 단정하게 재단되어 끊어질 조각이었다. 하지만 응고된 버터가 뜨거운 팬 위에서 둥글던, 각졌던 자신의 이전을 잃고서 녹아 바싹 눌어붙듯 풍부하던 맛과 향은 사라지고 팬만 더럽히는 마음들이 나의 세척을 기다린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 얼마나 복 받은 일인지! 내가 보고 싶은 이들은 물리적으로 멀리.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멀리멀리. 나의 복을 찾아보면 다복하다. 그러나 1등은 도망쳤다. 왜 1등은 도망칠까. 1등을 만나게 되면 꼭 물어보고 싶다. 왜 도망치시나요. 제가 당신을 1등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그는 되물어 올 것이다. '저에 대해서 뭘 안다고 1등으로 삼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