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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May 09. 2023

회전하는 물체는 넘어지지 않는다.

저는 버섯도 팽이버섯만 먹어요


2023년 3월 20일


나를 좀먹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 집 옥상에는 창고가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빌라는 각 세대별로 창고를 하나씩 배정받아 가지고 있는데, 크지 않은 공간이긴 하나 계절의 변화에 따른 물건들을 쌓아두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임은 틀림없다.


이전에 살던 집을 떠나 이사 올 당시에 나는 20살이었다. 대학교에 통학하고 있었고 그건 내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도 안나는 학부 1학년은 F 5개를 남기고 마쳐졌다.

그리고 바로 군대에 갔기에 23살에 전역하기 전까지 내가 더 익숙한 곳은 생활관이었지 새로운 집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하루를 마무리한 횟수가 충북 영동의 어느 생활관이었던 적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전역 후에 나는 학교 앞에서 자취를 했고 첫 1년은 혼자, 나머지 2년은 동기 형과 함께 했다. 자취는 문을 열면 거실과 가족들이 있는 본가와는 달랐지만 그 다름을 나는 좋고 싫음이 아닌 장단으로 받아들였다.


3년간 살며 생긴 집기들. 이젠 쓸모없어진 것들을 자취방을 나오며 버리고, 두고 나온 나였으나 미흡한 졸업 작품은 주섬주섬 포장해 본가 옥상 창고에 두었다.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 졸업 작업물은 누군가 사주기도, 팔기도 했기에 내가 모르는 곳에서도 잘 보관되고 있겠지만 옥상으로 갔던 작업은 그렇지 않았다. 뚜껑도 없는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창고에 두었다. 다섯 식구의 공용, 개인 물품이 쌓인 창고는 이제 들어가 물건을 찾으려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장소가 되었기에 자연히 뚜껑 없는 스티로폼 박스는 나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이번 늦겨울, 봄이 되기 전 얇은 외투라도 없으면 쌀쌀한 날씨에 나는 용돈을 받고 창고를 치우기 시작했다.


물건을 하나 둘 옥상 공터로 빼내고 나니 개중엔 물이 고인 물건들이 있었다. 졸업작품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는데, 도자기가 물에 상하는 품목은 아니었으나 물고인 박스를 들어낸 나는 이제 그 작업물을 보낼 준비가 되어있었다. 가져간 망치로 도자기들을 깨 마대에 담았다.


몇 년 전쯤 아픈 어머니를 기쁘게 할 요량으로 아버지와 동생들과 함께 청소를 했던 기억이 창고 청소를 했던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그때의 생각으로 계절에 따른 결로와 습기를 막기 위해 돗자리를 바닥에 깔아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나 사진, 액자와 같은 습기에 취약한 물건들은 바닥에서 떨어져 있었음에도 곰팡이가 피고 삭아 못쓰게 되었다. 청소하며 돗자리를 들어내보니 아래는 습기가 가득했는데 혹시 이게 돗자리를 깔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 질 녘에 창고 정리를 마치고, 나는 창고 바닥의 젖어있는 영역을 마커로 표시해 두었다. 문을 열어두면 내일쯤 콘크리트 바닥은 다시 검회색에서 회백색으로 말라있겠지. 생각대로 다음 날, 마커로 체크한 부분과 젖어든 부분은 점점 면적을 줄여나갔다. 나의 문제의식과 기대는 이루어졌고 창고 또한 건조해졌다.


20대 초반, 내가 집을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고 인식하는 과정엔 의미론 뛰어넘을 수 없는 시간적 결핍이 있었고, 과거의 내가 창고의 물건을 보호하고자 해 뒀던 조치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위해선 필연적인 가시적 결과가 필요했다. 둘의 공통점은 시간에 따른 인지의 변화에 있다.


나를 좀먹는 것들. 명확히 사람을 서서히 죽여간다고 알려진 것들조차 보통은 기호, 혹은 법리적인 테두리 안에서의 금기와 제한을 받는다. 거대한 관습은 최소한의 유지장치와 최대한의 권한을 보장한다고 알리지만 그것이 나에게도 적용되는 권리인지는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명백한 해악이 있음에도 기호에 의해 선택이 결정된다, 선과 악은 무조건적인 대악과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소선 같은 것으로 절대적인 결정의 결과를 만들지 않는다. 소선은 대악과 닮아있고 대선은 비정과 닮아있다. 선조차 일방적으로 퍼부어지는 것이라면 그곳에 따뜻함이 있을 리 없다.


내가 선이라고 믿던 것들. 사실 대부분 비정이었다. 고결하고 무결한 선만이 세상을 이롭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정 넘치는 마을이 아닌 수도는커녕 난방조차 되지 않는 모델하우스에 가까운 것이었다. 절대적 정의가 아닌 이상 나는 한쪽 눈을 감지 않고서는 그것을 정의라고 부르기 힘들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면 여기는 외눈박이 마을. 오히려 두눈박이인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다.


소선이 아닌 대악이었다는 것. 대선이 아닌 비정이었다는 것. 비롯된 해악과 부조리함을 깨닫는 과정엔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까. 몇 년에 걸친 외부생활의 물리적, 정신적 거리감을 좁힐 만큼의 압도적 시간. 혹은 그간 내가 해왔던 것들에 대한 관점의 변화. 나는 언제 올지 모르는 충돌을 기다릴 수 없어 주먹으로라도 대시보드를 쳐갈겨 에어백을 터뜨려야만 했다.


3월 31일

나는 내가 짧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을 당사자가 쉬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하고자 했다. 때로는 일리네어 키즈라는 말로 야망을 설명했고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20대 초에 느꼈던 무력함과 찌질함은 토이의 노래를 예로 들어 상대에게 설명했다. 일리네어를 아는 이는 그 확장성을 이해했고 토이를 알고 있다면 예시에 수긍했다.


인디밴드의 노래 내용이 보통 그랬다. 나는 당신 아니면 안 되고 상대가 불러낸 상상 이상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가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개인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 번도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기에 노래는 불러지고 감성이 팔렸다. 나 또한 그 마음의 이해득실 위를 정석대로 미끄러져 내려온 사람이기에 늘 찌질함에 대한 항목이 체크리스트의 한켠을 채웠다.


지금의 내가 누릴 수 있는 찌질함은 어떤 게 있을까. 나보다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수년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느껴지는 소비력의 차이에, 혹은 내가 아브락사스를 향해 끊임없이 알 속에서 투쟁하는 동안 동료가 이룬 학위와 사업자에 남몰래 느끼는 무력감들이 기다린다.

중2병도 중2 때 오는 게 복이듯이 다 같이 달려 발을 구를 때 달리기에 대한 열등감이 생기기를 다행이다. 아직도 내가 토이 노래의 주인공마냥 행동하지 않아서.


4월 9일

새하얗던 손아귀 안의 눈. 두꺼이 쌓인 눈밭에 손아귀를 굴려본다. 불어나는 눈덩이는 손 안의 눈뭉치의 고결함과 순수한 눈의 비율에서 점점 멀어진다. 눈 아래 깔려있던 나뭇잎, 나뭇가지. 먼지, 흙이 묻는다. 그러나 눈덩이는 불어난다. 구를 눈 밭이 있는 한 눈은 덩이를 넘어 집, 혹은 산 정도로 커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굴러갈 눈밭이 드넓길. 붙고 떨어져 나갈 불순물들이 사소해 보일만큼의 크기를 이룰 수 있도록.


4월 14일

무력한 내가 기도하는 것들은 대개 그랬다. 나에게는 기도를 해도 이루어질까 말까 하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방법이나 견해 중의 하나인 거. 내가 무던한 노력으로 도착한 장소가 누군가에게는 지도를 찾아보는 수고, 도보 한 걸음 없이 내려 당도할 수 있는 곳인 거.


가진 자들의 호의는 나 삶을 종종 바꾸어놓았다. 내가 무수한 시간을 불태워만든 보잘것없는 뜨거움은 먼저 도달한 자의 간단한 부름에 의해 급격히 끓어 넘친다. 견습생의 눈에는 동경이 가득 채워졌고 로망 적은 나에게도 그런 지위는 거부 불가능한 이능이다.


모두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한다. 물리적 결핍을 채우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하기엔 식견의 얕고 깊음을 떠나 일률적으로 일어나는 행위라서 주술적인 것으로 사료된다. 다들 누군가가 간단한 손짓으로 순간에 물을 끓여버리는 모습을 본 것인가? 어찌 다들 능력 밖의 일들을 해줄 이를 찾는지.


그래서 나의 무대 뒤엔 다양한 모양의 칼을 구비해 둘 수 있길 바란다. 누군가의 기도를 비웃으며 나의 견해와 수많은 툴을 모아둔 것. 너는 노력했으나 지저분히 난도질된 표면을 보란 듯이 깨끗이 절삭해 도려내는 것.


4월 15일

내 하루의 감정은 15만원. 그 이상이라면 얼마든 바꿀 수 있다.


말투나 글이 뾰족해서 그렇지 내 멘탈은 늘상 위태로운 상태로 세워져 있다. 개중에서도 나를 가장 무기력하게 하는 순간은 종종 그것이 숫자에 의해 세워지고 넘어뜨려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


딸을 위해 1시간 정도만  할애해   있냐던 어머님에 대한 감정은 노란 종이  장으로 삽시간에 달라졌다. 그런 일례들이 모였기에 구매할  없는 것은 없으며   없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금액의 부족을 돌아보라는 말은 나에겐 농담이 아니다.


적어도 나의 삶에서는 나의 감정도 상품이다. 내가 그것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사치를 선택하면 감정의 점유는 나에게 있게 되겠으나 타인이 비용을 지불하면 나는 단어와 눈길, 그리고 정신을 팔아 상대가 구매한 상품을 보증했다.


나는 나의 종일권이 15만원이라는 현실을 딛고 꼭 나의 보증서를 언제나 직접 소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다. 늘 그랬지 않은가. 어릴 적 나의 마음을 앗아갔던 상품들을 긁어모았고 마음은 상품이 새것에서 점점 낡아감에 따라 같이 소강을 이루었다. 또한 언젠가 안개비가 내리는 대교를 쥐색 삼각별을 타고 빠르게 달리는 그날이 오면 15만원에 하루와 감정을 팔았던 시기는 잊힐 것이다.


4월 16일

불편한 것이 편한 것이다. 내가 앞으로 지낼 곳, 함께할 사람. 그리고 할 일을 모조리 관통하는 말이었다. 편함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해 못 할 말이었을지도.


지난 후에 절절히 알았지만 그들이 베푼 호의는 아무런 꿍꿍이가 없는 손이 아니었다. 선뜻 그 손을 잡아당긴 내가 어리석었다. 늘 완전한 선의는 없다고 되뇌어도 나름 존경하던 이들이 무심코 내민 제안과 말들은 나에겐 심히 구미가 당기는 것들이었기에.


적당한 거리가 도리어 행복의 열쇠라니. 사회성을 떨어뜨리려는 말이라고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친근함이 맹독이 된 후의 나에게는 해독의 말이었다.

존경하는 이와 함께 했으나 일터에는 가지 않았고 가까이 위치하나 속뜻 있는 말을 하는 자의 조언을 뒤로 흘렸다. 때로 바쁜척하는 사람, 가끔은 남 말 다 무시하고 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 되었으나 나는 안 될 새끼, 거봐 내가 뭐랬냐 라는 말보다 정 없고 매너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차라리 좋았다. 내 감정 곳간의 빗장은 단단함에 감사할 수 있으니까.


5월 3일

2023년 5월 3일, 오늘은 2년의 매듭이 있는 날이다.


2년이 지났다. 옥상에서 했던 통화가 가져온 열등감에 사로잡혀 말문이 막혔던 날로부터 2년이.


 농도와 온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당시에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꾸덕한 기억들이 오히려  끝에 남고 시선 안에 남는다. 흐르는 물길에 풀어 그린 물감은 옅다 못해 백지라고 해도 믿겠다.


제출한 서류들의 온도가 제각각이다. 1250. 가장 뜨거운 가마에서 나왔을 도자기들이 차갑다. 얼어붙은 손끝과 긴장해 떨리는 눈과 목덜미가 있다.


텝스 성적은 기간적 어려움에 비해서 너무도 간단히 적혔다. 내가 성적표나 증명서 등을 제출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자기네가  시험이니 직접 확인하면  노릇이니까. 눈발이 날리던 강남역 뒷골목의 아침들도 그렇게 건조하게 마감됐다.


이미 온기도 촉촉함도 다 빼앗긴 수학계획서는 복도 옆 조화나 다름없이 쓰였다. 읽게 될 이들이 가까이 와서 단어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생기를 찾아보려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업로드를 마쳤다.


10분의 짧은 면접을 끝내고 나오니 햇살이 제법 따가웠다. 불과 며칠 전엔 후드가 날아갈 만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린넨 자켓도 답답한 따가움. 긴장은 다양한 형태로 찾아오지만 이런 기운 빠진 불안함은 적응이 안 된다. 오만함이 고개를 든다. 누군가에 의해서 거취가 결정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으나 어찌 물고기가 물을 떠나겠나, 제 힘으로 다리라도 돋아나게 진화해서 육지로. 혹은 목소리를 팔아 다리라도 얻을까.


1달 남짓. 그 뒤에 나는 소개어를 바꿀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남은 반년의 입꼬리를 위쪽으로 올리고 싶을 뿐이다. 알고 있듯이 0과 1은 다르니까. 꼭 나여야 한다? 나만 아니면 된다? 그런 게 어딨는가. 대의 앞에서는 그저 과정일 뿐.


목숨을 구걸하더라도 천하를 통일한다면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붉은 옷을 좋아하는 조조조차 과정에 올라있는데 나라고 과정이라는 말에 타지 않을 수 있는가. 그저 고삐를 단단히 움켜쥐고 낙마하는 그 순간까지 몰아치며 달릴 따름.


능력이 부족하니 입학하는 거 가지고도 별 난리를 다 친다. 내가 지향하는 삶은 제발 호들갑 없는 삶. 생경해 나오는 자연스러운 호들갑도 말고. 익숙하기에 능숙히 음미하는. 나오면 국물부터 마셔보는 우래옥 평양냉면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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