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5일
나는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다. 더할 나위 없는 자신감의 부재.
여태까지는 무지하여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지금은 어렴풋이, 그리고 어설프게 알기에 의구심으로 존재하는 이 사실은 앞으로 점점 그 시야의 흐려짐이 걷힐 때, 아주 견고한 생각으로 내 앞에 놓일 것이다.
더할 나위 없다는 말은 디자인적으로 얼마나 완벽한 구절인가. 빠질 것은 빠져나가고 순수한 마음만이 남은 그 상태에서야 비로소 더할 나위 없다는 말을 내뱉을 수 있으리라. 너는 더할 나위 없었을까, 너는 더 바랄 게 없었을까.
무지하게 찍혀있는 뒤편의 발자국은 어색하고 불온전한 모양으로. 항상 부족했기에 갈구했고 타자의 욕망과 전혀 다른 본인의 것에 실망하며 타협하다가 당도한 타협점에서 한 톨의 행복의 점도 찾을 수 없음을 알고 나서야 쥐었던 손을 펼쳐 털어내었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믿지 않음이, 순수한 불신이 잔인한 진실성을 더 만연히 드러낼 때가 있다. 어른의 역린을 도려내는 아이의 순진함과 같은 생각을 막연한 안갯속에서 꺼내 보이는 곳에 내놓은 누군가가 있으리라는 뭉뚱그려진 공상. 그리고 진실하지 않은 마음이 바람이나 욕망이나 편견에 의해 채색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이제 와서 그것을 통째로 대변한다.
내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진실한 감정에 대해 아직도 믿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믿지 않음의 이유가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벚꽃이 피어나고 져버린 자리에 백합이 피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나는 백합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어떤 마음을 가졌다.
나의 삶이 헛되고 헛되다가 헛된 일에서 눈먼 가치를 찾는 날을 맞이했다. 차라리 보이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면 어땠을까. 눈 앞의 것들을 쫓아가다 눈을 깜빡인 사이에 펼쳐진 것들은 헛된 마음과 공허한 주위의 풍경. 벚꽃나무는 또 벚꽃을 피워낸다.
적은 양의 사랑이나 감정으로 내가 느꼈던 마음들은 너무나 부풀려져서 실체는 알 수 없게 만드는 거품과도 같은 것. 물 끼얹어져 사라진 솜사탕과 같이 쉽사리 잃을 마음. 하지만 나의 마음은 물을 머금은 종이와 같이 쓰일 곳이 없고, 누군가의 말을 써 내릴 수도 없는 무용한 것. 언젠가 무용함을 찾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나.
내가 찌그러뜨리고 어그러지게 만들어버린 스스로의 모습에 속상하다. 내가 쌓은 무언가의 첨탑은 아슬아슬하게 모양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위에 올라갈 자리가 없는 것을. 언젠간 무너질 것을 알지 못한 채 바보처럼 쌓아만 올렸던 것을. 삶은 조약돌로 만드는 작은 돌탑이 아니었는데.
별 것도 아닌 것을 보고 눈가가 화끈거린다. 대부분 내가 고민하는 것의 형상을 한 어떤 것들인데 그런 사실을 지인에게 이야기할 때는 목구멍에 불을 머금은 듯하다. 떨리지 않던 일들이 떨리게 되고, 잘할 수 있던 나의 원숭이는 오를 나무를 잃었다.
자신에게 너무나 실망한 지금. 감정을 조절할 수도 없어 그냥.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