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7일
'얻다'라는 말은 '잃다'라는 말과 같은 말인 것을 이해했나. 채워진 것은 비워지고, 올라갔던 걸음은 내리막을 걸어야 하는 따위의 것.
나는 쉽게 생각하는 것이 참 어렵다. 쉽게 생각하며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나는 쉬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은데도 스스로를 싫어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끝없는 자기혐오가 내가 뒤로 했던 길 끝에 있는 걸 어쩌겠나.
걷던 길에 작년의 것과 같은 장미가 피어났다. 내가 녹인 얼음과도 같이. 다시 얼고, 다시 피어난 그것은 1년 전의 장미는 아니겠지만 나의 눈에는 다 같은 장미처럼 보였다.
내가 한 번도 선물하지 않은 저 아름다운 말. 이미지와 기억들의 모임은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 여행도, 선물도, 좋은 말과 위로도 모두 도처에서 나의 결점을 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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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인생이 바뀌던 순간과 장소를 기억하니.
인생은 어떤 순간으로 인해 바뀌는 걸까. 나는 그런 순간을 얼마나 목격해왔던가 그 순간을 목도했을 때 내가 풀어헤친 순간의 선물포장 안에는 무엇이 있었나. 엘리야의 선물 상자 속 만화책처럼. 여태까지의 나를 닫고 앞으로의 나를 연 그런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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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던 어느 날, 한 때 나는 그것이 사라진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구름에, 도시의 흐린 하늘에 가려진 것이었다. 나는 별을 다시 보게 된 일이 있었기에 별들이 가려졌음을 알 수 있었다.
우연히 갖게 된 에어팟의 편리함을 생각하고, 우연히 사게 된 화장품이 나에게 잘 맞았던 것이 생각났다. 좋은 것은 우연으로 찾아오고 별을 다시 보게 된 것 또한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마음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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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죽는다는 거 알고 있어? 어느 날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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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이 죽는다는 것을 그저 빛이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별은 빛나는 것이니까 빛이 꺼질 때 결국에 별은 죽게 되는 거로구나 하고.
하지만 별은 죽을 때 자신이 별로 살며 내었던 빛 중 가장 밝은 빛을 내고 죽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 상태의 별을 초신성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잃는 것은 그런 것인가. 찬란함을 남기고 눈 앞에 남지 않는 것인가. 난 생각의 사멸을 지켜볼 때 빛을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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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은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었음을 문득 깨달았다. 그렇기에 나는 눈먼 자로 계속 있을 수밖에.
그런 게 아니라면, 슬프게도 내가 했던 생각들은 별처럼 빛나지 않았기에 그 어떠한 밝음도 나에게 목격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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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나보다 더 지독하고 표독스러운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나는 항상 두렵다. 거울을 보기 싫은 것처럼. 나는 내 안에서 끓고 있는 용광로와 같은 생각들을 부어 내놓고 식힐 거푸집 따위는 없다고 여겼고, 나보다 더 높은 끓는점으로서 존재하는 사람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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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살 때 보고 언젠간 다시 떠올릴 것 같았던,
우리를 상처 나게 했던 것들은 다 우리가 원했던 것이라는 말은 길고, 그리고 짧았던 4년 후인 지금의 나의 계속되던 발걸음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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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하고 긍정적인 사람을 꿈꾸었고,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시간들이 많았다. 매일. 그리고 내일.
더 높은 끓는점은 나보다 더 쉽게 떠날 수 있고, 나보다 더 쉬이 손을 닦아버릴 수 있는 사람들.
누군가는 쿨하다고 말하며 누군가는 매정하다고 말하는 그 성향과 성격을 나는 가지고자 했고 이젠 그랬다고 생각했으나 항상 맨 위의 맨 위는 존재하고 나는 누군가의 위에 있지 않았기에.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자신을 벗어내고 사라지는 일이 가능한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허물을 제대로 벗어내지 못한 뱀이 썩어가듯이, 온전히 벗어내고 떠난 뱀은 돌아보지 않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