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일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그곳은 어쩌면 마음 속일지도 모른다. 다들 어떤 감독의 영화를 기다렸다고 한다. 나는 기다린 적이 없었는데, 누군가 어디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오지의 외딴섬보다, 깊은 바닷속의 비밀보다 깊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다가오는 취향들 그리고 기호들.
목전에만 보이는 세상을 보며 눈을 시려했던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나. 그 세상의 커튼을 당겨 나의 방을 어둠에 가둔 후에야 나는 나의 방의 소중한 물건들을 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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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꼼 열어준 그 사이로 너의 값진 물건을 보았다. 괜히 보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뭐 하나 맞는 것이 없던 그 안타까움. 어릴 적 치토스 안의 따조, 케로로빵의 스티커. 사랑은 직접 열기 전엔 알 수 없는.
'지키다.' 무던히 서글프고 외로운 말. 그 걸음을 떼는 순간순간이 고통으로 가득 찬 말. 세상 어딘가의 누군가가 죽을지 모르는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은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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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성을 난 모른다. 비단처럼 고운 이미지가 떠오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척박한 어떤 땅이 생각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손 위에 가지고 즐거움을 얻는 것을 경계하고, 그렇게 하지 않겠노라며 다짐했지만 어떤 마음에 나는 줄곧 물을 주고 가꾸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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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이 때문에 편히 잠드는데 스플린트가 필요했고 나는 삶의 절반을 가져가는 수면시간 동안 그 장치와 함께한다. 요즘은 이어 플러그와 안대가 필요할 때도 있다. 잘 잠들지만 더 좋은 질의 잠을 위한 나의 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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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나는 삶에 있어서 그저 허우대뿐인 입간판으로 변해가고, 내가 별안간 못과 망치로 얼기설기 만든 지지대만이 바람에 흔들리는 불안한 나를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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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굴러들어 온지 모르는 집 안의 출신 불명의 수건들. 희한하게 한 조각만 사라져 완성되지 않는 퍼즐. 매번 불편해하지만 바꾸지 않는 집 안의 시스템. 결국 오랜 시간 그 불편도 함께하며 가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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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 불편하거나 맞지 않는 물건이 생기면 잘 바꾸는 편이다. 지금은 나의 집이 없지만 만약 나만의 보금자리에 다다른다면 나는 보통 사이즈보다 큰 수건을 사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나는 퍼즐을 좋아하지 않는다. 맞춰지지 않은 그 한 조각이 싫다. 설령 모든 조각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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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기 위한 결정들을 숱하게 하고 지나왔다. 그것은 칼을 두르고 군중 사이를 지나오는 일. 주위를 피 흘리게 하는 죄책감과 앞으로 나가겠다는 마음은 항상 충돌한다. 머리가 오늘도 멍하고 먹먹하다. 스스로의 안에서 매일 치고받고 싸우고 있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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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옷가지가 많이 떨어져 있다. 누군가는 주워 입기도 한다더라. 어떤 옷은 어이없게도 암홀이 막혀있고 어떤 옷은 사이즈가 맞지 않아 입을 수 없다. 나는 주운 적 없는 그 옷들을 누군가들은 주워 입는다는 사실이 오늘도 새롭다. 왜 줍니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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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상이 돼가는 건지 비정상이 돼가는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그것도 누가 정한 거라 누가 되고 싶지도 않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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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되길 바라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느끼는 마음에 나는 요새 물을 잔뜩 주고 매일 잎을 닦아준다. 나답지 않게 격려와 애정을 아끼지 않는 모양이다.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다. 그래서 주위가 아주 어두워지고 어두워지면 내가 먼저 두리번거려서 옅은 빛을 대번에 찾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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