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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un 12. 2021

난몰라 난몰라 천번만번 말해줘도 몰라몰라

2019년 6월 17일

아, 나는 걸음이 빠른 사람. 생각도 시작도, 포기도. 끝도 빠른 사람.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래주머니를 달고 걷게 된 거리에서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보았다. 여태껏 지나쳤던 것과 터무니없다 여긴 생각은 내가 수용 가능한, 물에도 쉽게 녹는 가루가 되어있었다.


자라나는 새싹을 바로 잘라버렸다. 돌보고 정성을 쏟는 것이 아까웠던 것이다. 꽃을 원했으나 해를 쬐이고 물을 주는 것이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요 얼마간 자라게 내버려 두었다. 긴긴 시간만에, 정말 오랜만에 보는 초록빛. 그건 기대감의 색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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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핀 형형색색의 꽃을 꺾어다 내 방에 꽂아두었지만 금방 시들었다. 나도 그 꽃을 어디서 따왔는지, 이름은 무엇이고 꽃말은 무엇인지. 해를 보아야 하는지 그늘에 숨어야 하는지 따위의 것들을 알지도 못한 채 시든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난 후에는 줄곧 싫다고 생각했다. 길가에는 봄이 되면 꽃이 만개하고 나는 그것이 자연의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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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고자 하는 생각과 마음이 이리도 복잡한 적이 있었나, 나는 어떻고 저렇고 이래요. 뭐가 좋고 싫어요. 내 마음은 이렇고 당신 마음은 어때요. 달 비추는 밤길을 좋아한다는 둥, 그게 가로등이라도 같이 걸으면 좋겠다는 둥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이렇게나 더듬대며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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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방법을 앗아가는 사람. 내리막길에서 굴러 떨어지는 돌멩이와도 같이 어디에서 멈출지, 어디까지 내려갈지 알 수 없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당장 사라진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 깃털처럼 가볍지만 들어 올릴 수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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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보았을 때 나는 또 떨었다. 혼자 방에 누워 골똘히 생각하고. 예전처럼 도망칠 준비를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바라지만 그건 무서운 거라. 꾹꾹 정성을 다해 눌러썼지만, 반려당했던 어느 날의 편지를 다시 꺼내보는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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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찢어버린 것과 비슷한 일이다. 집중할 수 없어진다. 사시나무 떨듯이 떨다. 몸을 떨 정도로, 내 말문을 막을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도 아니다. 이유 없이 나는 벌벌댔다. 아, 이유가 없던 것은 아니었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곳에 흘리고 온, 흘려버린지도 모른 어떤 것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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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사랑했던 걸 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던 천둥벌거숭이와 같은 시절, 무지하고 상처 준다는 생각조차 땅에 묻혀 발견하지 못하던 시간, 세상에 무지한, 그렇기에 거짓말은 하지 않던 나이의 나를. 연주한 적 없는 노래를 들어보고 내 것이 되었다 착각한 어설픈 연주, 뛰어내려 본 적 없는 마음의 높이를 눈대중으로 재어 가늠했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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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을 펼 줄 모르는 스카이다이버. 브레이크 잡는 법을 잃어버린 운전자. 잃었을 때 알고, 존재 자체로 안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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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안전띠, 나의 낙하산. 내가 바라는 것은 어디엔가 눈처럼 쌓여온 아비투스와   없는 집합인가. 주변에서 내가 듣고, 보고, 향기 맡던 환경들은 종유석처럼 자랐다. 행복한 사람들의 관습에 비집고 들어가기 어렵다. 어릴  온탕에 몸을 전부 담그기까지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는지 생각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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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사랑의 첫걸음을 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아름다운지를 다들 알고 발을 움직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  사람의 사랑을 받는  하나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 되는  기분. 나만 빼고 다들 아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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