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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un 15. 2021

이게 명문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기억의 연속성에 있다.

2019년 7월 6일

여행은 사랑과 묘하게 닮아있다.

먼 여행에서 돌아와 앓는 아픔은 지난 사랑의 아픔과 닮았다.


끙끙거리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허기가 져서 문득 일어나 앉으면, 그리운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반찬을 꺼내 매운 고추장에 양푼 가득 밥을 비벼먹다가 갑자기 목이 메어 눈물이 핑 돌곤 한다.

분명 배가 무지 고팠는데, 몇 수저 떠 넣지도 못한 채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긴 여정을 곱씹어 본다.

왜 이렇게 온몸이 아프고 열이 날까, 이 뜨거움은 또 뭘까.


낯선 것들을 만나고, 그것에 감탄하고 그 안에 들어가 조금 익숙해질 무렵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하는 불편한 잠자리.

그 단조로운 변화 속에서 나는 아파해야만 했다.

어떠한 긴 여행을 다시 떠난다 해도, 얼마나 먼 곳을 향해 간다 해도, 나는 여전히 그대로의 자리에, 익숙한 너의 곁에 머무르고 있으니.


사랑, 그것은 너에게서 떠나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고 긴 여행이었구나.


그렇게 여행과 사랑은 어딘가 닮아있다.

아파하고 그리워하는 쓸쓸한 뒷모습 조차 닮아있다.


2016년 05월 03일, 오전 1:30


베이킹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지 일 년이 넘었다. 우연히 서점에 가서 본 홈베이킹 책이 예뻤다. 제빵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스트라는 것이 빵을 부풀게 한다는 것을 얼핏 안다. 나는 반죽하는 사람. 재료도 레시피도 모두 경험이 스민 것.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오븐으로 떠나보내면 나의 반죽은 곧잘 부풀어 올랐다. 여태까지 손 쓸 수 없는 곳으로 보낸 나의 것을 난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면 원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하지만 처음 살아보는 서툰 삶에 나도 부풀어 오르지 않은, 빵이 되지 못한 반죽을 꺼내 받아 들었다.


날씨가 더워서 바깥을 걷기 힘든 계절이 왔다. 나에게 있어서 여름은 바깥에 나가고 싶지 않은 계절로 여겨졌었지만. 이번 여름은 누군가 마음에 부채질을 해 흔쾌히 그 걸음을 허락한다.


가끔 마음 안에서 똑바로 걷는 법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오면 서둘러서 찾아보곤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든 바짓단의 흙 물이, 몰래 내 팔에 묻어 온 물감과도 같은 것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와 함께 걷고 있고, 그것들은 놀라서 화들짝 털어내는 것들이 아닌 은은한 나의 기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너의 흙 물, 너의 물감. 그 기쁨이 사라지게 되는 날은 아마도.


오늘도 실망하고 의심한다. 내가 듣는 노래 가사 속의 그 사람이, 그 사랑이 당신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손등 위 도장은 바래져 지워졌던 것처럼 나는 그대들을 의심했다. 잃은 후에 소중하다는 것을 안 내가 멍청한 것이 아니라 보잘것 없이 녹아내리고 있던 사탕반지를 소중한 것 마냥 여겨 그것으로 오만가지 감상을 적어내는 내가 멍청했던 것이다.


손에 물감을 잔뜩 묻히고 다니는 너.


언제나 그랬지만 공기와도 같이 내 주위에 머물러주는.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는 말은 내가 무언가를 잃어버릴 때마다 떠오른다. 손가락 하나쯤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금방 머리에서 사라질 일들은 항상 함께하는 것이 아니기에 가끔 문 두드려 찾아온다. 내가 버리고 주워오지 않은 것들이 찾아와도 잃어버린 것이라고 무모하게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기억은 참 간사해서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게 한다.


좋은 것들을 담아놓은 상자를 여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자랑스럽지 않으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무례한 것이었고, 그 무례를 나는 오늘에 와서야 이해했다. 너무 아는 척하고 싶으면 모르는 척하고 싶어 진다는 말 또한.


마치 뒤죽박죽 가득 찬 가방 속 가장 밑으로 떨어진 집 열쇠를 꺼내려고 드는 일과 같다.

정리할 것들을 왕창 꺼내놓지 않고서는 꺼낼 수 없는 것.


 나는 지금 집에 돌아가고 있기에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잠 마저 달아나게 하는 감정들은 금방 가시로 변했다.


나뭇잎을 강가에 떠내려 보내는 일. 마치 작은 배처럼 떠간다. 전완근은 쉽게 지친다. 무거운 쇠와 팔을 잇는 교량은 둘의 차가움과 뜨거움을 견디지 못한다.


손목에 멍이 든 것을 보았다. 먼저 힘을 잃는 팔을 보완하기 위해 찬 스트랩은 차가움의 무게만큼 중력이 이끄는 대로 손목을 잡아당겼다. 근육은 매일 찢어지고 다시 채워지고 더 큰 부하와 자극으로 찢어지며 성장한다. 나는 여태껏 마음도 같다고 생각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은 만고의 진리라고 생각했다.


나뭇잎은 쌓였다. 멍은 점점 짙어지고. 고무줄의 탄성은 여태까지 그것을 원래 자리로, 혹은 원래 자리가 아니더라도 스스로를 예전의 모습으로 돌려놓았으나 너무나도 강한 힘 앞에서 끊어져버렸다.


나를 절망 속에 살게 하고, 또 기쁨 속에, 기대 속에 살게 하는 사람.

잘 지내길.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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