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2일
굳이 빼지 않는 크록스 속 돌멩이었던 너, 제멋대로 들어와 구르다 손수 찾아보면 사라져 있던 너. 우리 사이는 채워져 굳어지기 전이라 돌연히 빠져버린 이빨의 빈자리가 공허하다. 다시 나지 않는다. 절대로. 그저 대체, 대체, 대체. 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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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치지 않으리라. 까지지 않으려 발목 뒤에 밴드를 붙여봐도, 피는 신발 뒤축을 물들였고 밴드는 너절하게 떼어진다. 항상 신발끈을 꽉 매어 신을 수도 없는 노릇. 언제나 내 발에 잘 맞는 신발을 고를 순 없는 법. 하나 진심을 꺼내려 뒤돌아 캐비닛을 열러 간 사이에 수신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쉽지도 않아 널 찾으려는 노력도 이제는 사치품. 싸구려를 찾는데 사치를 부려서야 못쓴다며 절하하는 어떤 것. 너희는 적어도 나보다는 신발 뒤가 붉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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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눈치 있게 행동한다는 건 참 어렵다. 이젠 하지 않게 된 좋아해도 아닌척하는 거. 때론 알아도 모른 척, 떠나도 남은척. 붙잡고 싶어도 내가 그 팔짱을 풀지 않을 때의 그 괴리에서 슬픔은 흐른다. 아주 많이. 가르침은 공기에서도 올 수 있다. 하물며 공기에서도 오는데도 어찌 쉽지 않았을까. 파도가 그치고 우산을 접었을 때야 넌 젖어서는 안 되었던 말을 주었다. 우리 사이에는 선이 있다. 배움이 보내지는 곳은 비슷하다. 매번 본 색은 구름 낀 밤의 푸른 검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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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칫솔이 낡았다 싶으면 생각이 든 그 자리에서 버려. 다시 잘 닦이지 않는 칫솔로 이를 닦을 미래가 싫어서. 혹시 내가 지금 버리지 않으면 곧 싫어지게 될까 봐 꼭 칫솔을 사 올 수밖에 없게 만들어. 쓰레기통에 처박힌, 칫솔걸이에서 사라진 그 소지품 떠올리면 편의점으로의 발걸음은 강제된다. 포기할 수 없을 거라고 정해놓은 것이 많다. 질질 끌려온 자국이 대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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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가 싫어 혼자 영화를 보고 꽤 먼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온 새벽, 휘파람과 콧노래의 길. 어두운 강가와 풀숲이 심연처럼 느껴지던 걸음.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무심결에 스쳐 지났을 건물. 모르는 길로 가 당도한 낯선 곳. 영영 우울하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절대 아침이 오지 않기를. 이 푸르스름한 배움과 가르침의 어둠이 영원하기를. 하루키 책의 여주인공들처럼. 벗어날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채로, 그래서 지난 몇 주와도 같이 웃지도 않고 꾹 다물고 내려간 입꼬리를 간직하며 불태워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너무 행복해. 곳곳에 파여 물 웅덩이가 많았으나, 포장된 도로를 걷던 내겐 결함과 결핍이 많지만 얼어붙은 이성의 눈엔 다 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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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이 멀어진다는 것과 같은 말인 줄 알았다. 같은 길처럼 보이지만 다른 동네일 때. 비슷한 신발처럼 보이지만 묶인 끈의 모양새가 다르다는 것을 나만 눈치챌 수 있을 때가 있다. 깊어진 관계의 깊이를 굳이 잠수해 바닥까지 들여다볼 필요는 없었다. 내가 알게 된 사랑의 향취처럼 드문 드문 떨어진 조약돌은 한 지점에 이르러서야 그 발자취를 멈추고 수북이 쌓여있었다. 기대하던 바와 다른 도착지였지만 나의 목적은 도착하려는 걸음이었으니. 나도 그 돌탑에 한 점 올렸다. 되돌아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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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물속으로 던진 무언가는 파장과 물보라를 남기고 잠겨갔다. 떨어지고 떨어져 바닥에 닿았을 때는 내가 버렸던 것들이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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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내 동생의 이름이 기억나는지. 그 발걸음이 기꺼운 내딛음이었는지. 가로등의 그림자를 넌 거두어 갔었는지. 기억력이 좋은 것은 너도 마찬가지였던가. 내가 잘못 들어선 날 입은 옷은 너만 아는 기억, 나만 아는 기억. 그 겨울 내음이. 그 초봄의 아직 찬 공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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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과자를 고르던 10대의 난 죽었고, 영화를 보러 가자던 말은 잊혔다. 생 로랑 립스틱이 상투적인 나, 따뜻한 손에도 설레지 않는 내가 이번 가을에는 남았다. 작년 가을, 호빵을 파는 편의점을 찾아 함께 걷던 나도 저 어딘가에 쓰러져 있겠다 싶다. 1년 새 혹자의 특별한 하루가 나에게는 그저 일상이 되던 날. 어떤 세상은 무너졌다. 지금 문짝을 뜯어내고 그 기둥을 허무는 사람은 다행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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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어설픈 나무 울타리였던 마음속 선입견은 이제 견고한 성곽처럼 보여. 나무토막 사이로 보이던 풍경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 결론지으며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모르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본다. 아무도 타지 않기를 바라면서. 스르르, 문이 열릴 때마다 눈을 감아야 한다.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