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9일, 내 생일
나의 생일,
스물네 번, 운동장을 돌고 났을 때 나의 갈증은 극에 달했다. 그런 몰골의 나에게도 아직 물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한 하루. 멈췄던 시작점이며 반환점에 많은 것을 떨어뜨린 채. 스물다섯 번째 발걸음은 떼어졌다.
⠀
보냈던 메시지들은 불타던 심지에 뚜껑을 덮은 듯 조만간 그 안쪽의 산소를 다 태우고 꺼진다. 안으로부터 오는 질식은 매일 역한 탄내와 그을음을 선사한다.
⠀
여태까지 해오던 습관을 버리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세상은 경력 있는 신입을 원하고 순수한 어른, 철이 든 아이와 같은 아이러니함을 요구하니까. 손에 익은 도구를 빼앗겨야 할 때가 오고 있음을 예감한다.
⠀
킁킁. 낯선 사람이 풍기고 지나간 너였던 코롱 향, 이젠 구리게 느껴지는 것이었지만 숨을 한 번 더 들이켰다. 자존심은 마음을 느린 편지같이 전한다. 영화 속 총상처럼 절대 상처 입은 즉시 고통은 오지 않았다. 혈흔이 뭍은 옷을 눈치챘을 때. 달짝지근한 그 잔상은 사그라들어가는 회색 숯이 든 화로에 닿은 손을 연상하게 했다. 붉게 데인 그 손을,
⠀
선을 긋는 사람들이 멋져 보인다. 넘지 못하는 붉은 선을 등 뒤로 그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근사했다. 거친 바닥을 직접 문대어 피로 그린 그림을 알고 난 후 나는 그들과 같이 거친 바닥 표면의 조도를 알았다. 굳은살의 느낌을, 반대편에선 다시 넘어오지 못하는 손잡이 없는 문을 알고 난 후 바닥엔 어설프고 불규칙한 농도의 선이 그어졌다. 낙장불입, 떨어진 사랑도 그랬다.
⠀
달을 보고 있으니 구름이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있었다. 달이 아주 밝았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보았던 구름은 비가 아닌 질투심을 머금고 별안간 먹구름이 되어 칠흑 같은 어둠을 몰고 왔다. 그리고 느닷없이 비가 내려 그 검댕과 삐뚤어진 선을 지워주었다. 어디가 경계였는지 모르도록.
⠀
시각은 변화했고, 예전처럼 편집하지 못한다. 잘라내지 않던 곳들을 자르고 버리던 어떤 것들을 고이 놔둔다. 그림을 돕던 보조선도 그림의 일부가 되기를 바랐으나 누군가 정의해둔 완성의 모습에 보조선은 없다. 다 마셔버린 음료 캔이 되어버린 마음은 바다에 쓸려가 사라지고 바다는 다시 마음이 된다. 밀물이 오며 썰물이 떠난다. 나는 가끔 밀물의 시간에 썰물의 자리에 서있곤 한다. 위험한 그 시간과 자리를 떠날 수 있게 그저 넌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했다.
⠀
나는 설레발이나 헛된 마음이 싫다. 누군가에게 받은 실망감은 어떤 비로도 지울 수 없어 시선을 돌려야만 하는 선이 된다. 겉옷이나 이불로는 덮어 끌 수 없는 불같은 그 감정. 내가 촛불이었을 때, 불을 번지게 하지 않고 나에게 향을 맡게 해 주었으면, 흔쾌히 내준 손을 잡았던 마음이 소중해질 거라고는 어리석은 난 몰랐네.
⠀
특별할 것도 없는 날이라고 떠들었으나 생일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 싶어 끄적거린 몇 단어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해 어기적대는 날 대변한다. 내가 올라선 외줄 위에선 18살이나 24살이나 똑같지, 하며 마음을 달래 본다. 물기가 말라 가는 머리카락 끝을 보며, 적은 안도감을 얻은 채로 끝난 하루
⠀
가짜는 쉬웠고, 진짜는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