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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ul 08. 2021

응애 나는 어른되기 싫어

2019년 10월 29일, 내 생일

나의 생일,


스물네 번, 운동장을 돌고 났을 때 나의 갈증은 극에 달했다. 그런 몰골의 나에게도 아직 물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한 하루. 멈췄던 시작점이며 반환점에 많은 것을 떨어뜨린 채. 스물다섯 번째 발걸음은 떼어졌다.

보냈던 메시지들은 불타던 심지에 뚜껑을 덮은 듯 조만간 그 안쪽의 산소를 다 태우고 꺼진다. 안으로부터 오는 질식은 매일 역한 탄내와 그을음을 선사한다.

여태까지 해오던 습관을 버리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세상은 경력 있는 신입을 원하고 순수한 어른, 철이 든 아이와 같은 아이러니함을 요구하니까. 손에 익은 도구를 빼앗겨야 할 때가 오고 있음을 예감한다.

킁킁. 낯선 사람이 풍기고 지나간 너였던 코롱 향, 이젠 구리게 느껴지는 것이었지만 숨을 한 번 더 들이켰다. 자존심은 마음을 느린 편지같이 전한다. 영화 속 총상처럼 절대 상처 입은 즉시 고통은 오지 않았다. 혈흔이 뭍은 옷을 눈치챘을 때. 달짝지근한 그 잔상은 사그라들어가는 회색 숯이 든 화로에 닿은 손을 연상하게 했다. 붉게 데인 그 손을,

선을 긋는 사람들이 멋져 보인다. 넘지 못하는 붉은 선을 등 뒤로 그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근사했다. 거친 바닥을 직접 문대어 피로 그린 그림을 알고 난 후 나는 그들과 같이 거친 바닥 표면의 조도를 알았다. 굳은살의 느낌을, 반대편에선 다시 넘어오지 못하는 손잡이 없는 문을 알고 난 후 바닥엔 어설프고 불규칙한 농도의 선이 그어졌다. 낙장불입, 떨어진 사랑도 그랬다.

달을 보고 있으니 구름이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있었다. 달이 아주 밝았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보았던 구름은 비가 아닌 질투심을 머금고 별안간 먹구름이 되어 칠흑 같은 어둠을 몰고 왔다. 그리고 느닷없이 비가 내려 그 검댕과 삐뚤어진 선을 지워주었다. 어디가 경계였는지 모르도록.

시각은 변화했고, 예전처럼 편집하지 못한다. 잘라내지 않던 곳들을 자르고 버리던 어떤 것들을 고이 놔둔다. 그림을 돕던 보조선도 그림의 일부가 되기를 바랐으나 누군가 정의해둔 완성의 모습에 보조선은 없다. 다 마셔버린 음료 캔이 되어버린 마음은 바다에 쓸려가 사라지고 바다는 다시 마음이 된다. 밀물이 오며 썰물이 떠난다. 나는 가끔 밀물의 시간에 썰물의 자리에 서있곤 한다. 위험한 그 시간과 자리를 떠날 수 있게 그저 넌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했다.

나는 설레발이나 헛된 마음이 싫다. 누군가에게 받은 실망감은 어떤 비로도 지울 수 없어 시선을 돌려야만 하는 선이 된다. 겉옷이나 이불로는 덮어 끌 수 없는 불같은 그 감정. 내가 촛불이었을 때, 불을 번지게 하지 않고 나에게 향을 맡게 해 주었으면, 흔쾌히 내준 손을 잡았던 마음이 소중해질 거라고는 어리석은 난 몰랐네.

특별할 것도 없는 날이라고 떠들었으나 생일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 싶어 끄적거린 몇 단어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해 어기적대는 날 대변한다. 내가 올라선 외줄 위에선 18살이나 24살이나 똑같지, 하며 마음을 달래 본다. 물기가 말라 가는 머리카락 끝을 보며, 적은 안도감을 얻은 채로 끝난 하루

가짜는 쉬웠고, 진짜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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