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일
누군가 와서 전두엽을 잘라 갔으면 한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싶다. 바보가 낫다. 축복인 동시에 나에겐 저주와도 같다. 손에 들고 있기에 무겁고, 그 팔을 통째로 잘라낼 수 없기에 허망하다.
텁, 나의 폐 속의 공기와 보이지 않게 둘러싸여 걷던 대기마저도 한 순간에 진공으로 만들어 숨이 막히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풀릴수록 조여지게 매듭지은 밧줄처럼 관념이란 무섭다. 어제 꿈에 누군가가 나왔다. 그건 너였으나 네가 아니었고. 희지만 검고, 축축하지만 건조했다.
물들인 머리. 눈에 얹힌 색조는 나의 현실에서뿐만 아니라 꿈속에서까지 심장을 찔러 손 끝을 굳게 한다. 일어나 보니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잠들기 전 먹은 감기약과 뜨겁게 맞춰둔 전기요 때문이 아닌 이미 피부 속에서 얼어붙은 땀이.
이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피면 그때마다 발로 마구 짓밟아 놓는다. 그럼에도 잡초는 잘 자란다. 한두 번 밟고 지나가서는 잡초가 자란 땅은 개간되지 않는다. 나는 꼭 마음속을 사랑 없는 땅으로 개간하리라.
뭐든지 참는 건 어렵다. 차라리 숨 쉬는 것을 참았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모순되지만 사랑에서마저 절제하고 고뇌함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기에 그냥 보내버리는 시간이 아깝다는 말 또한 동경했다. 작금엔 그 생각까지도 밟아버렸다. 잡초를 밟을 때보다 더 강한 힘으로.
너는 나에게 내가 지키며 사는 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말했다. 표면적 의미를 뛰어넘어 그 이면을 들추어 보았을 때 어떤 것들이 기다리는지 안다.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상대와 발을 맞춰 걸을 수 없는 걸음걸이가 눈에 선하다. 남들이 다 하는 것에 능숙하지 못한 것은 내가 쌓아온 과악이자 현재의 죄악이다. 미래도 이 번뇌를 벗을 수 없을까 봐 오늘도 두려움에 떤다. 사람들은 죄책감을 얻는 것에 예민해서 사과가 없더라도 배를 붉게 칠해 놓곤 내가 사과를 가지고 있노라고 말한다. 나는 너덜너덜해진 죄책감을 고이 모신 후 뭔지 알 수도 없는 과일을 버리고 붉은 물감이 뭍은 그 붓마저 부러뜨렸다.
환절기에는 항상 감기에 걸린다. 나 감기예요. 나 아파요. 하고 대놓고 말할 수 없는 나만 아는 불편감을 가진 증상. 편의점에서 산 약들을 대충 먹고 잠든 다음 날, 밖에서 하루의 반 이상을 소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나마 다행히 나라는 기계의 불편은 문명의 혜택을 받아 금방 낫는다.
틀어박혀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는 건 괜찮다가도 그 하루의 달이 중천에 뜰 때쯤에 매번 나를 울적하게 만들고 그때마다 난 보이지 않게 속에 생긴 출혈과 남이 눈치채지 못하는 나의 부러진 뼈를 떠올린다.
내가 겪고, 알고 있는 것을 전부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애초에 들을 사람이 세상에는 없는 이야긴 환절기의 감기처럼 온다. 뜨거워졌다 식었다를 반복하는 몸살 기운처럼. 한쪽 코로만 쉬어야 하는 숨, 꾸준히 의식하고 마셔야 했던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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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에 집에 들어와 냉장고를 열었다. 자취한 후로는 쭉 마트에서 산 1.5 리터 물만 채워 넣었지만 마침 생일이라고 받았던 마카롱들이 보여 꺼내서 집히는 대로 먹었다. 질질 흘리고 허겁지겁 먹었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먹는 모습이 싫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닐 줄 알았는데 나라고 해서 세로토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그런 내 기분은 더 싸구려처럼 느껴진다. 팔리지 않아서 끼워 파는 증정품 같은 내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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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가 참 우습다. 눈 앞의 사랑엔 온갖 이유들을 붙이곤 되니 안 되니, 사랑이니 아니니 따지며 돌아서는 내가. 절대 당첨되지 않을 복권을 꼭 하나씩 사놓곤 이번 주엔 된다며 기다리는 것을 소소한 재미이자 행복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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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가 불태워질 것이 무서워서 도망치고 있는 것이 맞다. 나를 장작으로 삼아 그대를 따뜻하게 비춰주거나 불을 지필 때만 써버리는 불쏘시개라도 좋으니 제 역할을 하고 다 타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난 다가가 불꽃의 고혹에 홀려 뛰어들 듯하다가도 나는 금세 뜨거움을 피해 도망친다.
내일이라도 당장 이 마음이 사라지길 바라며 새벽을 보낸다. 제발 이 마음이 오래가지 않길. 절대 밝은 빛을 내지 않기를. 멀리 달리고 달려서 절대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 주길 당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