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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ul 15. 2021

변덕이 심한 사람의 곁에서 겪는 괴로움

2019년 11월 10일

2, 5, 10.


이, 오, 십.


어릴 적 놀이터에서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읊는 의미 없던 숫자 세 개. 의미를 가지고 떠났다. 나를 불태워서 까지 길을 밝혀줄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내가 그 성냥을 긁었을 때. 어이없던 망상은 아스라이 사라진다.

주르르륵, 메시지를 쭉 올렸다가 다시 천천해 읽어내려 오며 복기한다. 내가 불안할 때 하는 일이다. 행여 실수했을까 봐. 그 사람과의 관계가 흔들릴 때. 뭐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것들은 자주 돌봐줘야 하니까. 실제로 나눴던 대화는 잘 복기가 안된다. 그리고 되새겨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당시의 내가 어련히 잘 말했겠지 싶어서. 그 근거 없는 믿음이 가끔은 잘못된 듯싶다가도 나는 그 불안이 끝나고 나면 다시 맹랑한 믿음에 살을 붙여 놓는다.

무지. 알지 못함은 때론 나를 편안하게도 해주지만 알고 싶다는 소망이 모락모락 필 때. 그 부드러움을 감춘다. 감미로운 멍청함은 사라지고 따갑고 거친 사실과 마주할 때. 혹은 내가 든 궁금증에 직접 찔려보면 얼마나 아픈지 알기도 한다. 종종 욕심은 이성을 앞서가고 무리한 대가는 관계의 부채로 이어진다. 등골이 휘면서 감정을 갚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토 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 손 쓰지 못하는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역겨움이 꺼내지지 않는 것이 두렵고 싫다. 그래서 술도 싫다. 내 정신이 온전치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당신네들이 좋아하는 그 알딸딸함은 내게는 그저 불편감일 뿐이다. 마음 또한 도려낼 수 없는 어딘가에 있기에 타인에게는 가릴지라도 여실히 느껴진다. 그저 비집고 나오는 구토처럼 시간이 지나 나에게로부터 전부 쏟아지기를 바랄 뿐. 시간이 약이다.

이름을 잘 못 외운다. 이름을 외우는 건 매일 딱 한 번씩만 벽에 있는 못에 망치질을 하는 것과 같다. 매일 망치질을 해도 언제 단단히 박힐지 알 수 없는 그런 거. 언젠가는 분명 액자를 걸 수 있지만 내내 무료한 그런 것처럼 느낀다. 가끔 욕심이 생겨 쿵쿵대며 못을 왕창 박지만 걸어둘 액자도, 자리도 없다. 내가 버렸으니까.

나의 열여덟. 주말에 알바를 했던 널 온종일 기다렸던 모습과 똑같다. 좋지 않은 자리에. 손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에 둔 물컵처럼 언젠가 한 번은 떨어져 깨져야 하는 것으로 정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쏟고 나서야 아는 위험지역. 키보드 주위엔 내용물이 든 컵을 두지 말아야지. 잘 때는 꼭 창문을 닫아야지. 목을 꼭 따뜻하게 해야지.

바짓단이 젖지 않으려면 물가로 가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바닷가에서 태어난 사람. 필연적으로 바지를 갈아입는다. 단순하게 내가 벌을 받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인과응보. 내가 했던 방식 그대로. 이건 형벌이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편하게 살아온 것에 대한 대가라는 생각이 든다. 누워서 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처럼 나의 소화불량은 올해 드디어 진단된 것이다.

촛불과 열풍기. 촛불을 끄는 바람의 또 다른 뜨거움. 뜨거움으로 뜨거움을 꺼뜨리는 일. 나는 지킬 힘까지는 없던 것이다. 분에 넘치게 치장한 옷과 신발은 거동을 자유치 못하게 했고 그 말인 즉 나는 내가 원했던 것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눈을 오래 뜨고 있으면 곧 의지할 곳이 없다고 느낀다. 새벽이 오면 그렇게 무거운 게 아닌데도 내밀기 꺼려져 버려 이내 감춘다. 매일 잘 곳을 새로 마련해야 하는 방랑자와 같네. 너희는 그저 나무 그늘만큼도, 적어도 등을 기댈 수 있는 정도의 지지도 나에게 보이지 못했나 봐.

느끼지 못하는 주파수의 소리를 어떻게 듣겠는가. 둔감이라는 말도 과분한 감각의 부재로 인해 인지하지 못했던 발가벗겨진 것과 나중에야 대면했다. 부끄러움이나 민망함을 넘어선 미안함이 그곳엔 입혀졌다. 한편으론 귀가 트였나 하며 기뻐했지만 그저 유행 지난 유행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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