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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ul 04. 2021

저는 인간이 싫어요. 아! 그쪽 말하는건 아니에요!

2019년 10월 2일

이렇게 많은 글자를  ,     없이 떨어뜨린 적은 없었는데, 적다 보니 내가 태어난 달이 돌아왔다. 작년, 머리 끝까지 미움에 잠겨있었으나 지금은  발짝 뭍으로의 전진을 보며 안도감을 내쉰다.

울지 말아야지. 언젠가 그렇게 생각했다. 우는 건 약한 거라고 생각했다. 우울함에 빠져서 뭔가 눈가 안쪽까지 가득 차서 찰랑거리는 표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나약한 거라고 생각했다. 내 곪아버린 생각을 타인의 입을 통해서 들은 날, 그 말이 얼마나 날카롭고 날이 섰는지 스치기만 해도 깊숙한 자상을 남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며칠간 침대에 자려고 누워있으면 눈물이 났다. 다 나 때문인 거 같아서 그랬다. 어깨에 지어진 짐이 너무나 무거워 보여 내 다리가 다 후들거리는 느낌이었다. 그 책임감의 중압감이 두려워 생각날 때마다 울어버렸다. 흐느끼는 모습이 참 추하다. 내가 찰랑임을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도 열심히 안 해서 이거밖에 안되는 걸 어떡하겠는가.

굳이 애를 써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전화기를 꺼두면 금방 증발해버릴 물로 그린 그림. 예쁘고 마른 여자애들은 천지에 널려있었다. 나는 조금의 노력으로도 어떤 세상을 얻었다. 하지만 난 타인을 나의 소유물로 여기지 않았고 내 미미한 소유욕에 그들은 나에게 쉽게 실망했고 질렸던 것 같다. 그저 학교 시간표가 같아서, 직장 동료로, 혹은 벗어날 수 없는 같은 그룹에 속했기에 계속 놓아져 마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마주하는 것은 그냥 일상과 호흡처럼 무신경하다. 하지만 나는 잘못 쌓은 젠가를 무너지지 않게 하려 덕지덕지 더러운 풀을 발라댔다. 주위 사람들이 툭툭 던진 말은 생뚱맞게도 그곳에 붙어 어떤 표식이나 팻말처럼 나를 지켜주는 방패처럼 보인다. 차라리 그런 항목에서라도 나는 타인을 기만하고 싶어서 놔뒀다. 나는 내가 굳이 손 써 붙이지 않아도 이런 훈장을 많이도 달았노라 하고. 하지만 그것들을 메고 오던 끈은 조만간 끊어질 것이다. 너무나 더럽고 무거워 닳고 닳아 어깨엔 굳은살이 박일 새도 없이 나버린 상처로 난쟁이 되었다.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쥐고,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놓아버리려 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나의 손엔 남은 게 없다. 의연한 척은 아주 부지런한 나무꾼이라 그를 부르면 언제나 장작을 한 아름 들고 찾아온다. 그대들이 나에게 준 뜨거움은 태울 것을 찾아다닌다. 타는 듯한 무언가를 나무꾼과 나는 바라보다가 잠든다. 깨어나면 어느새 떠나 있다. 불을 놓아야 할 때 그를 또 부르리.

보고 싶어라, 순수한 내 눈을, 함께 거울처럼 마주친 눈을. 안경도 렌즈도 없어 찌푸려 본 그 얼굴을 가로등 불빛이 만든 내 그림자가 가려버렸네. 기억력이 좋은 건 때로는 나를 슬프게 만든다. 당신이 기억하지 못한 시간이 나의 기억 속에만 있을 때 나는 둘만의 소외감을 느낀다. 둘이라는 작은 사회에도 소외감은 있다. 등과 등을 맞대며.

너는 나에게 준비가 안 되어있다고 말했다. 일갈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안에는 사랑이 있었던 듯 은연하다.


진심으로 나를 위해 버리는 용기. 쌓은 것을 무너뜨리는 건 다시 짓는 것을 전제로 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폐허를 원했던가. 내가 맞은 끝이란 건 항상 그랬다. 필연적으로 어떤 것은 버려진다. 하지만 빛과 열과 향, 그리고 꺼뜨린 심지가 함께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신발 속지와 여분 끈, 그리고 박스까지 전부 나는 신발이라고 생각했다. 난 욕심 많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버리고 싶던 역할은 버려지지 않았고, 쥐고 놓지 않으려 했던 것은 진작에 불쏘시개로 다 써서 타버렸다.

아야, 헬스장에 두고 온 물건을 찾으러가 사물함을 열어보다 손등이 까졌다. 나는 손등이랑 손가락을 자주 긁히고 베인다. 다치고 나면 약도 잘 바르지 않고 밴드도 잘 붙이지 않는다. 이따금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옷을 입을 때 문득 상처가 생긴 곳이 얼마나 자주 다른 곳에 닿았었는지 체감한다. 시간이 지나 사물함을 기억해 냈을 때, 이미 상처는 깨끗하게 나아있다. 툭툭. 빚어낸 단어가 바늘처럼 찌르지는 않았을까 늦게나마 안부를 물을 생각이 떠올랐다.

실패할 것들을 계속하는 것도 병이다. 쓰레기를 집 안에 계속 가져와 모아두는 사람은 괴짜라며 취재 대상이 되는데 무용지물이 된 사랑을 자꾸 모아두는 나는 반짝이는 물건을 모으는 까마귀라도 된 건가. 사실 병에 걸린 건 나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는 인간 새대가리. 인간 까마귀. 그래도 새 중에서는 똑똑하다.


하지만 난 사람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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