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28일
어느 날, 새어 나온 아픔을 받아 떠놓은 글.
#1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계속됐다.'
내가 힘들고 지쳤던 시간을 통과하며 썼던 저 말은 이제는 고통뿐인 토양 위에서 썩어버렸다. 세상엔 행복한 사람이 참 많은데 나는 그럴 수가 없다 행복 속에서 태어났는지 의심한 지가 꽤 오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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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고쳐지지 않는 상처를 가진 OO. 왜 그런 삶을 택한 걸까. 하고 생각한다. 24년 전의 일을 내가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살아가는 현재는 그 옛날의 시간의 영향력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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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와중에 일을 마쳤다. 2학기 들어서는 금요일에 서울에 오면 바로 일을 갈 수 있게 작업을 했다. 자신을 절벽으로, 극한으로 몰아세우는 일은 나를 강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마술적 사고 중에 가장 막연하고 나의 삶을 조져놓고 있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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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이번 주, OO 생일날을 제대로 공지해주지 않은 모임 멤버 때문에 OO는 화가 나서 OO에게 폭언을 퍼부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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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화나 나서 하는 폭언이 아니라 자신의 뼛속 아주 깊숙이 새겨진 어떤 각골 문자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죽고 싶어 진다. 평생에 걸쳐봐도 나에게 처음 이 세상에서 내가 없었으면 하게 만든 울부짖음. 사랑과 미움이 같이 있음에 의아해하다 처음 애증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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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걸리고 나면 수술 이후 복용하는 항암제가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했다. 누군가의 질병은 누군가에게 재앙이 된다. OO의 병은 자연적이거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생긴 것이 아니다. 내가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OO의 병을 숨기고 말하지 않다 나중에서야 처음 밝힌 때도, 내가 공중전화를 붙잡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절감하고 능력을 한탄하며 눈물 흘릴 때도. 나는 쭉 OO의 병은 인재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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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야망적 성격은, 이른 죽음은, 방탕하고 깨지 못한 생각은 어떤 피의 반세기를 망쳐놓는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을 매일 살을 찢어 뼈에 새긴다. 내가 그대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이것들을 읽으며 내뱉을 말이 누군가에게 애증을 가르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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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시간 쌓인 먼지처럼 숨을 후 하고 부는 정도로는 사라지지 않는 더러움은 나를 오늘도 비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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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아직 내가 사춘기도 오지 않았을 시절에 처음 썼던 비참하다는 말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썼었다. OO에게. 그때 OO는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을 느꼈겠지. 오늘의 나처럼 눈물을 삼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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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의 나를 위로하는 것은 커버린 나 자신 뿐이었다. 그렇게 높은 곳으로 가고 싶냐는 조소 섞인 OO의 말을 기억한다. 가치가 다른 것인지 아니면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부러움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일본 수학여행에서 유복한 친구들이 했던 말. 그건 OO가 OO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죽은 이는 돌아올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고 난 가식이나 표면적인 것에 인색해서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살았다.
#2
퇴근길에 혼자 밥을 먹으려고 버스를 타고 내려 신호등에 서서 기다리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참기를 몇 번, 그냥 아무 데나 앉아서 혼자 울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조만간 울 일은 또 생길 거 같아 아득바득 참아 아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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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했다. 열심히 해야 해서 힘든 날이. 마음속 은연중 내가 포기해버린 어떤 것들이. 부드럽게 말하는 거, 다른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는 가치를 따라가는 거. 진심을 다 줘서 나를 지탱하는 기둥뿌리를 하나 빼서 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기로 자신과 약속했다. 종이 몇 장에, 통장 속 0 몇 개에 쉽게 기분이 좌우되는 나를 누가 죽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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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재능은 언제나 사람을 비관적이게 한다. 열심히 해서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천장 위엔 이미 2층에서 태어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론 쭉 그랬다. 비겁하게도 정과 사랑은 현실에 색안경을 씌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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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로 태어나지 못함은 허영을 만들었고 나는 그 자체로 매일 거듭난다. 흰 뱀은 탈피해도 흰 뱀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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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잘 상처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이번 일주일의 발걸음 뒤는 피투성이다. 오늘의 글은 나의 기만이자 교만. 혹은 등잔 밑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단단해졌다고 여겼으나 그것 또한 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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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체중에 근력이 바닥이었던 난 평범해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노력을 했다. 팔을 후들대며 추하게 아령을 들어 올리고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무게에 깔려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당신들도 노력을 했겠지만 오르지 못한 어떤 곳에 나는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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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중 다행인 건 이제 난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작지만 가지고픈 물건도 살 수 있다. 이런 걸로 소소한 걸 보면 어린 날의 나는 아직도 길 어딘가에서 혼자 울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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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혼을 결심한 이유도. 어린아이를 혐오하기 시작한 이유도. 모두 내 가장 가까이 있는 커플의 모습에서 얻은 것. 동생들을 미국으로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들은 나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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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왜 죽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삶보다 작은 단위의 것에서 해답을 얻었다. 그들은 끊어낼 수 있었으나 자의든 타의든 손에 이미 많은 것이 들려 있어 수지가 맞지 않았다.
가진 것이 적을 때 죽어야만 타산에 맞는 거 아니겠는가. 진시황은 삶이 영원하길 바랐고 죽음을 피하려 했으나 혹자는 삶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시대를 거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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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가 구린 탓이고 내가 부족한 탓이지만.
멋지지 않은 나. 참 구린 나. 죽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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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쉬면서 스케치북을 폈다. 나는 참 무용한 것들을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