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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Jun 30. 2021

빛과 열과 향의 뒤에 오는 것

2019년 9월 20일

이제 나에게 가을은 미움의 계절이 되어버렸다. 낮과 새벽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일관하기 어려운 시간이 오면 언제나 누군가를 미워했던 나의 방은 더 자욱해졌다. 개미처럼 열심히 준비했던 외투를 입을 수 있는 회백색 계절이 되고 나서야 연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어디론가 빠져나가 버렸다. 사실 베짱이가 되고 싶었다. 낭만은 없는 대비였기에.

금방 잊혀지는 것들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다 볼을 깨물어서 피가 철철 났다.  문건 찰나인데  며칠의 식사 동안 쓰라림을 함께 삼켜야 했다. 허리의 근육은 쉽게 피로해져서 리프팅을 하려면 평소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한다. 좋지 않은 자세로 생긴 디스크는 나에게 운동을 강요했고, 이젠 좋아하게  운동을 하기 위해서 삐딱한 자세를 지양한다. 추하고, 번거롭지만 내가 욕망하는 것들은 대개 그런 식이다. 원해서 가져보면 다른 것을 잃어있는 .

그래서 내가 객체를 잃는 과도기는 항상 슬픔이 있고. 나는 보통은 슬픔에 몸을 맡기고 떠내려간다.

흘러 흘러 닿은 곳. 뒤돌아가던 오래전 어떤 기억을 불러 세운 날. 어두운 버스 안에서 살며시 기댄 작은 머리를 보며 나는 갖가지 생각을 되돌려봤다. 그때만 해도 친구라는 건 연인으로 가기 위한 환승역쯤으로 여길 어린 때였으니까. 하지만 별안간 치킨집 아주머니가 여자 친구랑 잘 어울린다면서 너스레를 떨었을 때 되돌린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부정하며 손사래를 치던 나의 모습을 넌 어떤 창을 통해서 보았을까.

난 잘 모르는 가수의 노래를 듣는 너. 내가 잘 모르는 브랜드의 옷을 좋아하는 너. 나는 지나가지 않는 역의 가보지 않은 길에 있는 생소한 카페를 집보다 편히 들락날락하는 마음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것이며 네가 남긴 잔향을 어찌 내가 들이마실 수 있을까. 코를 막은 것은 이제 절대 알 수 없는 노래. 절대 구매할 일 없을 브랜드. 절대 타지 않을 노선의 지하철. 애초에 마시지 않았던 커피.

이해할 수 없음을 알았을 때부터 그대를 위해 살고 싶다는 묵직한 생각을 저 발치에 두고 왔다. 머리맡에 놓인 100과 99는 달랐다. 적어도 나에게는. 삶을 소진해 지켜낼 것을 두고와 없는 사람이 어찌 깊고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며 걷겠는가.

이해하지 못함은 오해를 낳고 이내 가랑비와 같이. 닦이지 않은 오염과 같이 스며든다. 내가 바깥에서 맞아 달고 온 빗물은 어디의 빗물받이에 떨어졌을까. 뚝뚝, 바닥에 떨어뜨린 물방울은 얕고 흐린 발자국을 대신한다. 문을 열고 들어와 걸어온 길의 어디에 우산을 두었는지 챙겨주고, 흘러내려 모인 빗물이 담긴 통을 내가 먼저 눈치채어 비워줬다면.

가끔 아니라서 다행인 일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기였는지 아닌지 결정해야 할 때. 이루어졌을 때의 기쁨을 그렇지 않았을 때의 안도감이 압도할 때도 있으니까. 오른쪽을 보며 왼쪽을 볼 순 없고 바닥에 놓인 동전은 한쪽 면만 우리에게 보여주니까.

언젠가 사랑으로 뒤바뀌어 괜스레 잃어버린 것이 된 우정을 떠올린다. 대학생이 된 이상 고등학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 버려진 마트처럼 최선 같은 건 애초에 없었을 때 필요로 했던 차선과 차악. 무리하여 얻어보면 그 속엔 한 오라기의 여유도 없는 그런 거. 시간은 편도뿐이라 우리를 애석하게 만든다.

불꽃을 보는 일을 좋아한다. 은은하고 느리게 흔들리는 작은 불. 별거 아닌데 마음을 홀린다. 향초에 별로 관심 없던 시간 동안은 가끔 라이터를 켜보곤 했다. 손아귀에 힘이 많이 없던 어린 날에는 라이터를 잘 켜지 못했다. 더군다나 부싯돌을 돌려서 켜는 라이터는 겁 많은 나에게는 친해지기 어려운 도구였다. 하지만 어렵사리 켠 그 작은 불꽃을 보고 있노라면 금방 멍해져 라이터의 쇠가 뜨거워지는 것도 잊는 듯했다.

불을 켜는 건 언젠간 꺼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입으로 바람을 후 하고 불면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림자도 소리도 없다. 이내 방을 잔잔히 덮던 향초의 향을 비웃는 심지 탄내.

빛과 열과 향의 뒤에 오는 것, 끝이란 건 항상 그래. 필연적으로 창을 열어놓게 된다. 새벽의 찬 공기가 들어온다. 미움의 계절의 바람이 탄내의 자리를 빼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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