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헌 Aug 21. 2021

만들어 내는 것의 기쁨을 잊지 않기 위해.

2020년의 글을 올리기 전의 나, 의 마음을 적는 2021년의 나.

오늘은 다음 글이 올라와야 할 날짜인 2020 아니고 직전의 글을 마친 2019년의 직후 또한 아니다. 2021년의 여름. 담아두었던 글을 다시 서랍으로 옮긴  올려야  때가 왔다.

밑천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우습게도 내가 고귀하고 즐겁다고 생각하는 일도 이제는 숙제라는 카테고리를 달고 나에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


글은 차고 넘칠 만큼 썼다. 정확히는 썼었다. 그때의 나의 눈에 미치지 못하고 비할바 안된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기에 과거형의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슬플 때 힙합을 춰, 순정만화에 나오는 인물의 오그라드는 대사처럼 나는 슬플 때 글을 써, 라고 농담조로 말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굳이 머리를 짜내고 주제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나의 글감과 글은 쌓여갔으니 어찌 보면 세 번의 도전만에 이루어진 브런치 플랫폼과의 만남은 필연적인 것이었을지도.


2020년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누가 됐던 죽기 전 자신의 삶을 회상할 때 웬만하면 행복했다고 하기 마련인데 2020년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게 하는 시간이었다. 글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고 그것은 현실에서 내가 가지고 있고 지니고 있는 축복과 기쁨과는 다른 것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우울하고 축 쳐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시간들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써놓았던 글을 번호를 매겨서 차례차례 올리다 보니 누락된 숫자도 있고 영 폼이 안 났다. 사실은 처음 업로드를 시작했을 때 글에 맞는 사진을 고를 에너지를 쓰기가 아까웠다. 나는 그저 내 생각을 배출하고 옮겨놓을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고 여기서까지 나를 치장하는 것은 금칠을 한 변기처럼 생뚱맞게 느껴졌으니까.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 범 지구적으로 퍼졌고 그것은 우리들에게 비단 병이나 치료와 같은 개념의 의료서비스에 국한된 영향이 아닌 생계와 문화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상에 침투했다. 기운은 점점 빠졌고 2020년 이후의 삶이 무언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처음 브런치에 올려보는 사진이다. 사진 속 손은 졸업전시 도록에 실렸다. 그다지 기쁘지도 감격스럽지도 않은 졸업이었지만 나의 손은 어찌 됐든 기록에 대표로 남았다.


19년과 20년을 가르는 지점에서 환기를 하고 싶어 두서없이 쓰게 된 이 글에 쓸 사진을 찾다가 1년여 만에 다시 보게 된 저 사진이 왜 이렇게 어색한지. 꼭 없는 일이었던 것만 같은 시간. 내가 불안해하고 어딘가 불편한 옷가지처럼 어기적 거리고 긁적거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증좌로 삼으면 딱이겠다 싶어 올려본다.


딱 한 달 정도 전에 읽던 책에서 토픽을 얻어 쓴 글을 첨부하며 정신없는 글을 끝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내가 혹여 나중에 보고 부끄러워하고 책망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

2021년 07월 16일


빛은 어떠한 지점에 도달, 혹은 자신이 지나치는 공간의 매질에 대해 가장 빠르게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2005년 쓴 서문에 다른 이의 말을 빌려 이런 내용을 썼다.


해양 구조 요원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갈 때 일직선상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거리는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물에서 헤엄치며 나아가는 것보다 지상에서 달리기를 해 가장 빠른 지점에 도달한 후 물에 뛰어드는 것이 보다 빠르며 현명한 선택일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결론적으로 수영과 달리기를 적절히 조합하여 가장 적은 시간 안에 조난자에게 도달하는 것이 구조요원의 목적임에는 변함이 없고 과정에서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빛을 의인화하여 삶의 진리나 추구하는 학문적 결과를 도출하는 행위의 일환이지만 우리가 삶에서 쉽게 간과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던 나로서는 굉장히 질 좋은 음식 재료를 받아 든 느낌이었다. 나는 이 생각을 나의 입맛에 맞게 손질하고 조리한 후, 삼켜 내 것으로 만들 요량이다.


좋아하는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에는 이런 말이 나왔다. 오직 돌파. 돌파? 영감과 힘을 주는 문구이지만 그만큼의 에너지를 갖지 못한 이에게는 절망적인 문구가 될 수도 있겠다.


우리는 매질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결국 우리의 음성 또한 공기라는 매질을 흔들며 지나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나의 삶의 매질에는 꽤나 다양한 것이 있었다. 내가 피해 가거나 에너지가 있을 때는 고귀한 뜻을 간직한 채 돌파하며 지나와야 했던 것들. 경제적 궁핍이나 감정적 격정, 우울증 같은 것들이 나에게는 몸을 웅크리려 움직임을 소극적으로 만드는 매질이었다.


내가 지금 통과하고 있는 시간 속 매질들은 참 성가시다. 구하고자 했던 이에게 아무리 빨리 도달해도 이미 죽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빛보다 생각 없는 인간. 빠르게 갈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작가의 이전글 제 때 버리지 못한다면 마음 속도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