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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Aug 07. 2021

제 때 버리지 못한다면 마음 속도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다

2019년 12월 31일과  2020년 1월 1일의 사이

' 사막에서 그는 너무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12월이 지나가기 전에 지갑을 열어 모여있던 영수증을 꺼냈다. 나의 영수증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 때론 꼭꼭 눌러 접어 지갑 속에 넣어두곤 한다. 종이의 접힌 선처럼 반듯하게 정리되진 않는 영수증에 달린 생각들.

아라리오 갤러리 입장권, 서울 경부행 편도 버스표. 일본 가정식 2인분. 그리고 맥. 못 털어내고 안 털어낸 것들. 영수증은 꼭 접어두지 않으면 새겨져 있던 글자가 금방 날아가버린다. 손톱으로 눌러 접어둔 것은 필연 날아갈 글자들을 좀 더 오래 잡아두고 싶던 탓.

딱 그 정도. 내가 녹지 않는 곳까지만 멀어지고 네가 얼어붙지 않을 만큼만 다가가서,

안부를 물을까 싶어 카톡 대화방에 들어갔다 우연히 반년을 넘게 읽지 않던 카톡을 읽게 되는 것. 생각나 연락했어, 라는 말이 인색하고 영하에 내놓은 금속처럼 오히려 내 손이 달라붙어 살갗의 겉표면을 뜯어가는.

숲의 나무들은 숲 속에 있기에 구분되지 못하고 물속으로 던져진 돌멩이는 속절없이 잠겨간다.

하늘로 날아가버린 풍선이 점이 되고 그 점에게 점이라 부를 만큼 작아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봤다. 천천히 날아가길 바라던 날에 글을 썼고 빨리 날아가버리길 바라던 날에 사진을 꺼내봤다.

구급약은 손이 잘 닫되 안전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 때문에 서랍은 항상 꽉 닫히질 못한다. 내가 눌러 담은 물건들은 서랍장의 뒤편으로 넘어가 온전히 닫혔던 가구의 모습을 잊어버리게 했다. 삶의 서랍은 쏟아버리기엔 그 누구도 들어 올려 뒤집을 수 없는 것. 누가누가 덜 닫히나. 누가 먼저 넣어둘 곳을 잃고 모두 떨어뜨려버리는가.

껌을 씹을 때면 그 포장지를 꼭 주머니에 넣는다. 나중에 뱉을까 싶어서. 그러나 내가 구겨 넣은 그것은 항상 처음 구겨진 그 상태로 버려진다. 내게서 버려질 것들도 결국 각자의 자리를 달리해버린다. 잃은 후의 가치는 매길 수 없다. 내가 치른 기회비용의 가치는 쭉 천정부지로.

어릴 적 나의 하늘에는 별이 떠있었다. 시간이 흘러 별이 땅으로 떨어진 어느 날, 나는 비로소 땅에 닿은 별을 보러 갔다. 별에게도 불시착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빛나던 별이 까맣게 타버린 모습을 보는 나의 시선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별똥별이 떨어지던 한 해. 유성우로 뒤덮인 내 하늘. 원하던 일들은 타버렸다. 형체를 잃고 부스러져 재로 변해버렸다.

또다시 별이 뜬다. 오랜만에 향초를 켰다. 멀리서 빛나던, 하나 가까이 왔을 때 모조리 타버린 그것들 보다. 나의 곁에서 은은하게 빛을 주고 향을 주고 온기를 주는 것이 낫다고 위로하며. 나도 소중한 당신들에게만은 빛과 열과 향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에게 다시 찾아와 준 1월. 고마움이 오기 전에 나도 뒷걸음질로 걸어보았다. 두 사람이 걷기엔 나의 사막은 참 비좁구나.

결국 영원히 언 것은 없었고, 이미 빠뜨린 돌멩이는 별안간 바닥에 닿는다. 풍선은 언젠가의 고도에서 터져 날아가기를 멈출 것. 서랍은 꽉 차있고 별은 영겁에 다다르지 못하고 떨어진다.

얼었던 것의 찬 기운. 내 손에 쥐었던 돌의 조도. 풍선이 주었던 가벼움. 빈 서랍장의 설렘. 순간보다는 길었던 별의 반짝임. 모두 꼭꼭 눌러 접었다.

난 여전히 하트를 잘 못 그린다.

영리하지 못했던 2019년, 영악한 작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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